유방암 진단 후 수술까지
8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원무과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이제 정말 시작된 걸까?
간단한 입원 수속을 밟은 후 입원실을 배정받았다.
한낮이지만 병실은 짙은 어둠이 깔려있다.
병실 밖 복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 같다.
침상마다 있는 커튼들은 행여 누가 볼 새라 완벽하게 다 쳐졌고, 불도 꺼졌다.
중앙의 형광등만 홀로 켜져 있다.
누가 새로 입원하는지, 누가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는지 관심도 없이
오롯이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고 있는 듯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간호사가 들어와 팔에다 커다란 주삿바늘을 꼽곤
다시 휑하니 나가버린다. 옆에는 각종 약물이 걸릴 폴대가 서 있다.
나는 정말 유방암인가? 조금씩 실감이 난다. 옆 침대에서 신음과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중얼중얼.. 기도문 같은 것도 들린다. 누가 옆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고통의 감정을 드러낸다.
수술을 앞둔 나까지 마음이 심란하다.
간호사가 다시 부른다.
유방외과에서 전절제 수술에 필요한 사전 체크를 하고
성형외과에서는 유방재건을 위한 선들을 잔뜩 그려 넣고,
범죄자의 머그샷 찍 듯 45도마다 돌며 사진도 찍었다.
유방암이 걸렸으니 요주의 인물이 됐다는 건가?
마치 보통사람들과 달라졌다고 표식을 해놓는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니 저녁 8시.
여름의 한가운데라 해는 이제 막 졌는데 병실 안은 이미 한밤중이다. 중앙에 있는 형광등마저 꺼졌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낮은 신음소리, 누가 들을까 속삭이는 소리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병실의 무거운 어둠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직 난 이렇게 멀쩡한 데... 그들과는 다른데..
더 이상 병실에 있을 수 없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휴게실로 갔다.
아무도 없는데.. TV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린다.
시선은 TV에 가 있지만 마음은 나를 질식시킬 것 같은 그 병실에 있다.
나도 내일이면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겠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 싸우면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겠지.
가끔 내 오른쪽 가슴을 만져보며 수술 후 모습을 그려보지만 상상이 잘 안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을 믿고, 목숨을 맡겨야 한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내 몸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느새 내 몸의 주인은 나의 담당의사가 돼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가슴은 더욱 두근거린다.
휴게실엔 TV 소리보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내 앞에 놓이게 될까?
어떻게 내 모습이 달라질지 도통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두렵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심장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이른 새벽, 캄캄한 병실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환자들이 자든 말든 상관없이 간호사가 들어와 항생제를 놓거나, 진통제를 놓고, 맥박이나 혈압을 쟀다.
나에겐 녹색의 수술복을 주며 갈아입으라고 한다. 이제 시작인가? 얼마 후 담당의사가 찾아왔다.
나이 드신 분 먼저 하고 두 번째로 수술할 거란다. 두 번째로 하게 되면 점심 이후가 될까?
어젯밤부터 금식한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오후 3시. 수술실로 갈 이동식 침대가 도착했다.
시키는 대로 침대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며 이끄는 대로 갔다.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와 남편의 얼굴이 멀어진다.
몇 층인지도 모르는 곳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개의 문을 더 지나니 수술 준비실이다.
천장엔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그려져 있고, 성경구절도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한 배련가? 하지만 긴장된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진짜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잠시 후 다시 침대가 움직이더니 수술방에 들어섰다.
순간 싸늘한 기운이 돈다. 바깥은 한 여름인데 오한이 든다.
대기실의 천장과 달리 차가운 스테인리스 조명이 가득한 데,
하나같이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파란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끼고, 수술용 모자를 쓴 10여 명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다.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마치 태엽 감은 인형처럼 정해진 레일을 따라 움직이듯
묵묵히 자신들의 일만 한다. 그곳에서 나는 투명인간이고, 철저한 이방인이다.
무기력하게 처분만을 내리길 바라는 이방인..
나는 무슨 죄를 지었던가? 잠시 참회를 해본다.
마치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처럼 양팔을 벌리라더니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킨다.
몸도 수술용 침대에 벨트로 꼭 묶는다. 내 몸에 살포시 덮여있는 수술복만이 자유롭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마음 편히 하세요.
한 숨 푹 자고 나면 다 끝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