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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Nov 23. 2020

자기는 했으면서 왜 남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할까.

 - 너 그러다가 나처럼 돼. 그러지 마!     

- 저는 언니처럼 될 건데!!!

  언니가 그러지 말라고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얘기 끝에 저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후배의 넋두리를 들어주다 훅하고 털어놓은 그녀와 나, 서로의 진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배에게 나처럼 될 거란 말을 듣고도 뿌듯하기보다 덜컥 겁이 났던 사람이 있을까? 나다.     


        후배의 그 말은 ‘나를 닮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무엇을 더 닮기에는 이미 우리는 처음부터 너무 닮은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결이 같은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그 덕분에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일로 만난 관계였지만 사적으로도 허물없이 친해진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나처럼 될 거’라는 말은 아무리 다른 길을 걸으려 해도 성향상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으며, ‘나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멈추라는 경고였고, 그 대신에 내가 좀 더 당당하게 살아달라는 당부였다.     


        방송작가에게 커리어는 ‘대표작’이다. 나의 경우 1N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소위 말해 터진 프로그램이 없다. 시청률이라는 게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라면 나는 히트작을 여러 개 가진 대작가가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현실은 조기종영을 맞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의 실패(!)가 나에게마저도 실패로만 남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나는 매번 얻는 게 있었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때때로 나라는 존재는, 나 자체보다 ‘대표작’이 더 중요하기도 했다. 아니, 그럴 때가 더 많았다. 어쩔 수 없고, 당연한 일이다. 그게 내 가치고, 능력과도 같은 것. 말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 게 프로의 세계. 그걸 알면서도 나는 늘 커리어보다는 마음 편한 곳을 선택했다. 그 결과 나의 커리어는 프로그램 이름, 한 단어로는 단번에 알 수 없어서 장황한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프로그램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지나온 나의 선택이 아쉬운 건 있어도 후회는 없다. 시간을 돌려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결과를 다 아는 지금에도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냥 그게 나다. 그러면서도 후배에게는 나와 다른 선택을 하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겪은 아쉬움마저도 없었으면 해서. 그녀를 납득시킬 증거로 나는 매번 나를 들이밀었고, 내가 겪었던 서러움을 토해냈다. 오로지 후배를 생각해서 드러낸 지난 내 서글픔이었다. 그녀는 그게 싫었던 거다. 좋아하는 선배가 자신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모습이. 

    

- 그런데 언니!

  언니도 알잖아요.

  제가 언니처럼 될 거라는 거!     


        자기는 아무리 말려도 나처럼 될 거라고. 그래서 내 말이 미래의 자기 모습처럼 들려서 슬퍼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녀에게만 보여준 내 진심이 슬프다는 말이 며칠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을 몰라주는 후배에게 서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서운해도 되는 일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하루, 이틀, 삼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서운함이 완전히 걷히고 이해가 찾아온 건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나와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그녀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그녀도 그럴 거라는 오만함이 잘난 척 허세를 부렸다. 그것은 단지 나의 과거였을 뿐, 반드시 그녀의 현재나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그제야 마냥 서운하기만 했던 마음이 미안했다. 내가 뭐라고, 그녀의 미래를 예단한단 말인가. 오히려 서운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 대신 ‘나처럼 되겠다’고 말하는 후배의 말이 많이 고마웠다. ‘나답게’ 잘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방송작가 지망생 시절, 방송아카데미에서 현역 작가 선배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첫 강의 시간에 한 선배님이 한 말 중에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말이 있다. 방송작가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힘드니까 아니다 싶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자기 마음 같아서는 시작하기 전인 지금에라도 다른 일을 알아보길 바란다고 했다. 이미 꿈을 이룬 사람이 해보는 괜한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자기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왜 우리 보고는 하지 말라고 하지?     


        나는 그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방송작가가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녀처럼 후배에게 나와 같은 선택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쩌면 후배도 그때의 나처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언니는 언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왜 저한테는 하지 말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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