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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an 26. 2022

상대에게 절대 들키지 말아야 하는 말.

기대하지 못했던 문자가 왔다.      

     

- 작가님 잘 지내시죠?          


        언젠가 내가 했던 프로그램에 섭외한 적이 있는 일반인 출연자였다. 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그 후로는 공통분모가 없었고, 그 약속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지 못한 상태였다. 아주 예의를 갖춘 새해 인사가 담긴 문자. 하지만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행사 섭외 건으로 그의 지인이 나와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는 연예인을 섭외하고 싶어 연락처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내 연락처를 지인에게 전달해도 되겠냐는 게 문자를 보낸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읽혔다.     


        반가움보다 당황스러움이 컸던 것이 단순히 안부보다 부탁의 의도가 더 큰 문자여서는 맹세코 아니었다. 이런 전화나 문자는 흔하다. 나 또한 섭외 때문에 타인에게 많이 한 부탁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느낀 당혹감은 그동안 내가 거친 절차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의 문자를 받은 것은 내 전화번호가 동의 없이 그의 지인에게 전달된 후도 아닌, 그의 지인과 이미 통화를 마치고 나서였다.           


        어쩔 수 없이 본인 번호를 넘겨줘야만 해결 가능한 상황이라면 당사자에게 의사를 먼저 물어봤던 게 내 방식.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그러는데 혹시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괜찮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경우 반드시 내 번호를 넘겨줘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내 연락처를 넘겨주기 전에, 나에게 물어봤더라면 사적인 이유가 아니라 공적인 이유였으므로 그의 지인이 굳이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고도 매니저 연락처를 그를 통해 전달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안면도 없는 이에게 내 전화번호가 하릴없이 알려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내 번호를 일단 알려주고 나서도 나에게 예의를 차릴 방법도 있었다. 정말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할 생각이었다면 명확하게 교통정리를 하면 됐다. 자신이 먼저 상황 설명을 해 놓을 테니, 전화 통화는 그 후에 해보라고 말이다.      

     

        그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연락처를 부탁한 사람이 그가 믿을만한 지인이고,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면 나 역시도 괜찮다고 할 터이니 내 연락처를 넘겨주고, 바로 나에게 동의를 구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내가 그보다 빨리 지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그의 편의대로 진행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는, 그저 씁쓸했다. ‘미리 언질을 받았으면 덜 당황했을 텐데... 아무튼 담당하는 매니저 번호 알려드렸습니다.’라는 말로 모든 아쉬움과 서운함을 접으려 했다. 그런데...


- 제가 문자를 남기는 사이에 벌써 연락을 하셨군요.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프로그램 잘 보고 있어요.      

    

        아마도 나는 그에게 상대를 탓하는 ‘벌써’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제가 늦었네요’라는 말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필요했던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보다 묻지 않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바랐던 것 같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결과 자체는 변하지 않았을 일에 삐죽 튀어나온 실망을 도로 집어넣지 못했던 건 그의 마지막 말이 결정적이었다.           


- 아, 저는 다른 팀으로 옮겼어요     

- 아하. 저는 작가님이 하셨던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지금보다.     


        지금은 내가 하지도 않는 프로그램의 시청 소감을 끝으로 우리의 문자는 황급히 조기 종영됐다.     

  

      예의가 아닌 예의상, 인사가 아닌 인사치레는 상대에게 절대 들키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이라도 가장 성의 있게 연기(!)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임무. 정체를 들키는 순간 나머지 진심도 거짓으로 의심받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건네려 했던 새해 인사도, 미안함 대신 전한 고마움도, 방금까지 잘 보고 있다고 말한 프로그램의 예전이 더 좋았다는 고백도. 그의 진심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고, 더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다. 내가 알아야 했던 것은 나와 그의 지인, 두 사람 중에서 그에게 중요했던 사람이 나는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그가 배려하고자 했던 사람도 내가 아니었다는 것뿐이었다.          


        부탁은 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들어줌으로써 완결되는 에피소드와 같다. 그래서 제아무리 부탁을 다른 이름으로 포장하려 한들 의미 없는 노력이다. 오히려 부탁은 철저히 부탁으로 보이도록 할 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부탁의 순서가 중요한 이유다.  

   

        때로는 부탁은 흔한 안부로 치장하기보다 거두절미하고 부탁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낫고, 쉽게 내뱉는 고맙다는 말보다 한 번쯤 망설인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의심받아서는 안 되는 진심만은 지킬 수 있다. 거기에 예의상이나 인사치레로 하는 다른 말이 붙으면 ‘미안하다’와 ‘고맙다’는 말에 담은 진심은 금방 순결함을 잃고 만다. 내가 아니라 단지 내가 가진 그 무엇이 필요했던 것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야 말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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