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진 Oct 13. 2020

때로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언젠가 더치페이를 하면 예외 없이 꼭 ‘100원을 적게 보내는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의 글을 봤다. 그날도 같이 밥을 먹고 더치페이로 12000 원을 달라고 했더니 11900 원을 보냈단다. 고작 100원이라서 매번 그냥 넘기고 말던 친구는 큰 맘(?) 먹고 이유를 물어본다.    

 

- 전부터 궁금했는데 100원씩 덜 보내는 거

  왜 그런 거야...?’

- 아...! 100원은 너한테 안 아깝잖아.

  100 원씩 1년이면 꽤 모아

- 안 아깝다는 게

  나는 100원이 없어도 괜찮다는 거야???

- 음...... 그것보다 굳이 100원 막 받아야 되고

  그런 거 아닌 거 같으니까...

  그냥 그걸 내가 모은다는 거!

- 그 100원을 왜 내 걸로 모아...?

  1년이면 꽤 모은다는 건 난 그만큼 못 받는다는 건데...

  앞으로는 100원 덜 보내는 일 없었으면 좋겠어...     


        이 이야기는 ‘100원을 덜 보내는 친구’가 우리 사이에 100원까지 꼭 받아야겠냐며 서운해하다가 13000 원을 보내고, 이제는 만족하냐며 되묻는 것으로 끝이 난다. 문득 나에게 '너 130만 원 없으면 죽어?'라고 묻던 그 사람 생각이 났다. 

   

        내가 방송 작가 5년 차 때였다. 나보다는 10년 이상 차이 나는 경력을 가진 선배님이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프로그램 사무실로 직접 찾아왔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상당히 의외였다. 나이차도 나이차거니와 그 선배님과 나는 딱 한 번, 두 달 정도 같이 일했을 뿐 친분이 거의 없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영 회사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루트로 알아보니 평판이 좋은 회사는 아니었다. 특히 돈 문제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전화로 몇 번을 거절했지만 직접 찾아와서까지 설득하는 정성을 마냥 모른 척할 수가 없어 나는 수락했다.     


        하지만 걱정하던 일은 결국 벌어졌다. 프로그램이 종요되고 나서 원고료 입금 날짜가 지났는데도, 마지막 원고료가 들어오지 않았다. 찜찜했지만 누락된 거겠지 했다. 그런데 ‘역시나’였다. 같이 일하는 다른 작가들도 못 받았다고 했다. 보나 마나 선배님도 돈을 못 받았겠다 싶어서 선배님에게 전화했다.     


- 선배님, 저희 돈이 안 들어왔어요. 선배님도 못 받으셨죠?

- 아니, 나는 받았어. 너희가 직접 회사에 말해봐     


        자신을 제외한 작가 후배들이 돈을 못 받았다는데 당황하기는커녕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 팀을 세팅한 건 그녀였고, 내가 그랬듯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믿고 일을 시작했다. 아무리 같이 일하자고 애걸복걸할 때 마음과 안녕할 때 마음이 다르다지만 돈 앞에서 ‘나만 아니면 돼’ 스킬을 쓰는 그녀에 대한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전말을 알고 나서는 더 착잡했다. 듣던 소문대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됐으니 우리 원고료는 떼먹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만 돈을 줬느냐. 그녀는 다음 프로그램을 그 제작사와 또 하기로 약속됐던 모양이었다. 자기 살기 위해 우리와의 의리는 버려야 했던 것이다. 왜 친분이 없다시피 한 나를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그때서 알았다. 그녀 주변에는 더는 그녀와 일하겠다는 작가 후배가 없었을 테니까. 그녀 때문에 결심했다. 나는 그녀처럼 후배들을 나 몰라라 하는 선배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그로부터 7년 후 나는 그녀와 같은 위치가 되었다. 내가 팀을 세팅했고, 책임졌다. 나를 고용한 곳은 믿을 만한 회사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리와 같은 고용인 입장에서 지금은 사업주가 된 작가 선배님의 회사였으니까, 누구보다 후배들 입장을 헤아려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입금 날짜가 제대로 지켜진 날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후배라는 이유로 매번 이해를 강요받았다. 나를 믿고 온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대표가 된 선배님에게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나는 가장 나중에 받아도 되니 후배들 돈은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연차가 가장 높은 내 원고료가 예산에서 가장 높았다. 내 선택은 적중했고 다행히 나를 제외한 후배들은 프로그램이 마무리된 후 돈을 다 받았다.     


        처음 얼마간은 형편 되는 대로 성실하게 입금을 해줬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입금을 미루고,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돈과 얽힌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7년 전에 알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일말의 이해마저도 버리게 했다.     


- 너 그 돈 없으면 죽어?

  그 정도 돈,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만 좀 해라!     


        모든 일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100원이나 130만 원이나 처음부터 돈을 제대로 줬으면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 박한 사람들은 앞뒤 다 자르고, 현재 괴로운 상황에 처한 자신만 생각한다. 그 결과 인과관계는 바뀐다. 어이없게도 돈을 받아야 되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내 경우에도 그가 만들어 놓은 ‘나쁜 사람 프레임’에 빠지니 타격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잘못한 것이 없는 데도 내가 마치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 게 너무 분했고, 억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몰아세웠나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가 노린 게 이것이었으리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쁜 사람에게 나쁜 사람처럼(?) 구는 게 뭐가 문제인가? 또 나쁜 사람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마저도 말이 좋아 좋은 사람이지, 사실은 호구일 뿐이지 않은가. 굳이 나에게 해로운 사람에게까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있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전 24화 어떤 고백은 다시 못 볼 사이라서 가능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