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워하는 것

by 이광

평소에도 될 수 있으면 사람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칫 잊어버릴 수도 있어서 책상 한쪽에 에포케(epoche)라는 단어를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놓았다. 사람의 한두 가지의 일만 보고 저 사람이 어떻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에게 호의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일로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었다. 비록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으로 편협한 생각의 틀에 사로잡혀 사람의 등급을 매겼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필연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내 생각이 옳고 중요한 줄만 알았지, 타인을 이해하려 하거나 존중하는 태도는 한없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너무나 위선적이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없이 부족하고 결함 많은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TV에서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는 안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겉으로는 웃고 있더라도 말하지 못할 아픔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설령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생각될지언정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싶어 다음의 글을 써놓고 자주 읽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가 있는 법이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광활한 우주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으며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나의 우주가 그러하듯 그의 우주에도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내 우주가 평화롭길 바라듯이 그의 우주도 그러하길 바라자.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의리를 떠올려 보았다.


의리(義理)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적혀있다. 여기에 한 생각을 더하면 의리는 어떤 관계 속에서 상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의리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바른 도리라고 한다면 설령 그 상대가 초면부지(初面不知)의 사람일지라도 의리로써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 의리라면 그 관계는 샘물처럼 맑고 꽃처럼 향기로울 것이다. 그렇게 의리로써 사람을 대하면 계곡에서 시작된 작은 지류가 강물이 되고, 또 그 강물이 바다를 이루듯 결국 너와 나를 너머 살만한 세상이 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에 더해 의리가 사람 사이에서만 지켜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도 의리는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자연은 늘 사람을 의리로써 대하나 정작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살면서 ‘나’라는 사람이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나이가 든다고 해도 이러한 반성이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슬픈 일이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반성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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