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과 2월에는 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는 걸 SNS를 통해 알 수 있다. 봄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설렘이다. 봄이 오기도 전에 주위는 온통 봄기운으로 충만하고 마음에는 이미 화사한 봄꽃이 핀다. 그래서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아름답다.
사람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꽃을 보는 데 있지 않다. 봄을 기다리는 시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은 뭔가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그것은 일종의 환각이나 달콤한 꿈과 같다. 그래서 사람은 기다림을 위해 끊임없이 대상을 찾아 그리워한다. 겨울에는 그 대상이 봄이다. 그런 의미에서 봄은 짝사랑과도 같다.
누군나 짝사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짝사랑이란 설렘이고 행복이지만 필연적으로 고독과 슬픔을 동반한다는 것이 짝사랑의 숙명이다. 짝사랑은 하나의 대상과 오롯이 둘만의 세계를 마음속에 품는 일이다. 사랑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행복한 일이고, 혼자만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쓰라린 일이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짝사랑은 행복하고도 가슴이 쓰라린 외로운 투쟁이다.
하지만 짝사랑은 일종의 환각과 같아서 짝사랑이 주는 고독은 여타 다른 통증과 달리 결코 물리치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대상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사랑하는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심정은 어떤 말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하다. 행복하다가도 한순간 한숨이 나오고 웃었다가도 이내 얼굴이 굳어져 버리기 일쑤다. 그리움으로 몇 날 며칠 잠을 설치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애처롭게 혼자 사랑을 가꾼다.
하지만 짝사랑은 짝사랑일 때 더없이 빛나는 법이다. 짝사랑의 대상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짝사랑이 주는 고독과 슬픔을 못 견뎌서가 아니라 스스로 짝사랑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고백이라는 주사위를 던진다. 하지만 고백은 온전한 사랑을 위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미 짝사랑을 끝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 여기서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지 짝사랑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짝사랑은 짝사랑만으로도 충분히 온전하다. - 대상이 고백을 받아들여서 서로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짝사랑하는 사람의 고백은 거기에 목적이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짝사랑을 끝내는 데 있다. 그래서 설령 대상이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 충격이라는 것은 이미 예고된 짝사랑의 후유증으로써 가벼운 감기몸살을 앓는 것과 같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해지고 마는 감기, 바로 그것이 짝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설계한 결말이다. 짝사랑을 앓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욱 단단해지고 조금은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어쩌면 짝사랑은 그 대상보다도 짝사랑하는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유희 일지 모른다.
3월에 들어와 두세 차례의 봄비가 내렸다. 겨우내 오후 6시도 되기 전에 어두워지던 것이 이제는 오후 7시가 되어도 환하다. 기온이 제법 올라가 이제는 산책할 때 끼는 장갑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차 가벼워지는 걸 보면 역시 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가지마다 올라온 여린 새싹들의 배냇짓을 보는 것과 방방곡곡 봄꽃이 피었다는 즐비한 소식들이다.
상춘객들은 봄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러 들뜬 마음으로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느라 여념이 없다. 자연 속으로 들어간 상춘객들은 마치 군락을 이루는 진달래도 되었다가 산수유도 되었다가 매화가 되기도 한다. 상춘객들은 꽃이 피기도 전에 이미 봄꽃이었다. 꽃이 꽃을 보러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간 것이다. 꽃이 꽃을 알아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풍경이다.
4월이면 사람들은 벚꽃이 만발한 벚꽃길을 걷고 눈발처럼 날리는 꽃눈을 맞으며 행복한 그 순간을 기억하고자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는 봄이 들어있고 봄을 닮은 사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 속에서는 계절뿐만 아니라 사람도 봄이었다.
봄은 기다림에 비해 짧은 계절이다. 우리가 제대로 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겨우 한 달 남짓. 그래서 봄은 더 애틋하다. 마치 혼자 하는 짝사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