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먹던 중에 거실에 켜놓은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일명 행복 전도사인 한 유명 강사의 강연을 듣고 있던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내심 부러웠는지 내 관심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전해주는 그 강사를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멋진 재능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을 통해 웃음과 행복을 전해준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간혹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것조차도 어렵다는 걸 깨닫곤 한다. 단순히 청중에게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울어나 웃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주 근사하고 대단한 일임을 인정해주고 싶다.
그런데 그 강사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은 행복한지 묻고 싶어졌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대체로 감정소비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다가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그 강사의 강연을 여러 번 들었다. 그때마다 내가 그 강사 덕분에 마음껏 웃을 수 있었고 행복했던 만큼 그 강사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대중매체에서 더 이상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나는 텔레비전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예전의 기억 때문에 관심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전해주면서 자신도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렸음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증세가 심할 때는 그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아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도 행복 특강을 여러 번 했던 터라 우울한 사람이 행복 특강을 한다는 것이 진실성이 결여된 행위로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연히 알게 된 가톨릭 사제가 그에게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 보라고 조언했다. 그 조언에 따라 그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프랑스에 있는 한 수도원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침묵하고 걷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던 중에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했어’라는 말이었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예전에 내가 불면증과 번아웃으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담당 의사도 같은 말을 했다. 외부로만 관심을 갖지 말고 내부로도 관심을 기울여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그동안 잘해왔다고, 수고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자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한 어려움을 마주해야 했을 테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설령 내 생각과 조금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