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
2021. 10. 2
아침에 일찍 전통시장에 가서 쪽파 한 단과 배추 한 포기를 샀다. 지난번에 담갔던 파김치를 식사 때마다 너무 잘 먹고 있어서 한 단 더 담그기로 했다. 배추는 겉절이를 만들 생각이다. 얼마 전에 홈쇼핑으로 주문한 배추김치가 도착했는데, 양도 적을뿐더러 제맛도 나지 않는다고 어머니께서 몇 마디 하시고는 김치를 드시질 않으신다. 평상시 어머니는 매운 음식을 드시지 못하셔서 김치를 잘 드시지는 않고 나물 위주로 드신다. 그래도 갓 담은 배추김치가 드시고 싶으셨나 보다고 생각하고 파김치 담글 때 맵지 않게 겉절이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배추 한 포기를 사 온 것이다. 유튜브에서 미리 레시피를 확인했는데 저번처럼 담그면 되겠다 싶었다.
주방 탁자 위에 신문지를 넓게 펼치고 그 위에 쪽파를 올렸다. 작은 칼을 이용해서 뿌리 부분만 미리 자르고 나서 쪽파 하나씩 들고 다듬었다. 끝부분은 조금씩 날리라고 어머니께서 하셔서 그대로 했다. 쪽파를 다듬으면서 나는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지난번에는 어머니께서 다듬어주셨는데 오늘은 어머니께서 기도하실 시간이라고 방에 들어가셔서 혼자 할 생각이었다. 대파였으면 좋았을 텐데, 쪽파는 왜 ‘쪽’이란 접두어가 붙었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하나 쪽을 내서 다듬느라 오전이 지나가 버렸다. 파를 다듬는 일이 명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라 그저 마음을 비우고 일명 ‘멍 때리기’하는 심정으로 임했다.
쪽파가 지금 내 손안에 들어오기까지를 생각해보았다. 누군가 씨앗을 심었을 것이다. 햇빛과 물과 공기와 흙의 양분으로 싹을 틔우고 한 잎씩 살을 채워가며 자라서 이곳에 왔을 것이다. 파는 햇빛이 스며들고 이슬이 맺히면서 여러 날의 낮과 밤을 보냈을 것이다. 비록 쪽파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듬다 보니 먹을 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 담그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김치를 참으로 많이 먹었다. 먹을 때는 맛있다는 생각만 했지 어머니의 노고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데는 인색했다. 맛있다는 말이라도 더 크게 할 것 그랬다.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에 대해 늘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요즘에 내가 음식을 해서 드리면 아주 맛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머니께 음식이 맛있다고 몇 번이나 표현했을까 생각하니 무척 죄송스럽다.
파를 다듬고 나니 어머니께서 오셔서 거들어 주셨다. 배추를 먹기 좋게 자르고 소금과 물을 뿌려 두고, 파도 똑같이 소금과 물을 뿌려 놓았다. 이제 간이 배면 버무리기만 하면 되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금세 배추나 파 모두 숨이 죽어 맑은 물로 씻어내고 버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드실 겉절이는 맵지 않게 하려고 고춧가루를 조금만 넣었다. 깨를 뿌리고 어머니께서 드셔 보시고 맛있다고 하셨다. 내 입맛에도 괜찮았다. 그다음에는 파에 양념을 넣고 비볐다. 파김치는 익혀서 먹을 거라 고춧가루를 더 넣었다. 파김치 버무리는 것은 전에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금방 끝나버렸다. 파 다듬기가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양념에 버무리는 일은 순식간이었다. 겉절이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파김치는 다용도실에 내놓았다.
파김치와 배추 겉절이를 담그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으면 생각도 못 하고 지나쳤을 것을 알아차리게 되어 나름 흡족한 시간이었다.
자주 방문하는 이웃의 포스트에 한자 ‘족(足)’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족(足)’이 들어가는 단어 중에 ‘만족(滿足)’이 있었는데, ‘마음에 흡족함’이란 뜻풀이가 달려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일이나 생각이 그 나름대로 흡족하다면 결국 만족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