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
(*파김치 이야기는 오늘로 끝납니다.)
2022년 4월 3일
봄나물을 기대하며 마트에 갔다. 엊그제만 해도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되었던 쑥이며 보리, 냉이는 종적을 감춘 상태였고 그 자리를 생각지도 않았던 쪽파가 차지하고 있었다. 봄나물 생각은 잊고 반가운 마음에 쪽파 두 단을 사 들고 왔다.
파김치를 무척 사랑하는지라 지난해에도 파김치를 두 번이나 만들어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파김치를 사 먹을 때의 맛과 직접 만들어서 먹는 맛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파김치를 직접 담글 때 들어가는 시간과 공력(功力)을 맛으로 환산해서 더해야 한다고나 할까.
지난해 파김치에 얽힌 에피소드를 글로 적은 바 있지만, 파김치를 담그는 데 가장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쪽파를 다듬는 일이다. 그때 글에도 적은 것처럼 쪽파를 다듬을 때 ‘쪽’이라는 접두어의 위력을 실감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쪽파를 다듬는 일로,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고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룬다는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고 하면 조금은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을 정도로 공력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다듬어도 줄어들지 않은 쪽파 더미를 보면서 웃음을 자아냈던 또 하나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파김치 담그려다 잘못하면 사람이 파김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김치를 담그려다 파김치가 될지언정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파김치라서 눈이 시어지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수고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말이 그렇지 그 과정도 꽤 재미있는 것이 사실이다. 맨손으로 다듬었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여기저기에서 받아 놓은 일회용 위생장갑을 끼고 쪽파를 수월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거나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회용 장갑을 끼고 다듬는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이라 할 수 있다. 나 같은 초보가 쪽파 두 단을 한 시간도 안 되어 손질할 수 있었으니 이만하면 요령을 제대로 터득한 것일 테다.
쪽파 다듬기가 끝나면 나머지는 눈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수월한 일만 남는다. 다듬어 놓은 쪽파를 물로 씻어 큰 대야에 담는다. 지난번에 파를 소금물로 숨을 죽였던 것과는 달리 파 머리 부분에 멸치 액젓을 뿌리는 걸로 간소화했다. 조리법에는 풀을 쒀야 한다고 하는데 집에 밀가루도 떨어지고 해서 밥 한 덩이를 믹서에 갈아서 살짝 끓여서 고춧가루, 물엿, 통깨와 함께 쪽파를 골고루 버무린다. 파김치를 통에 담아서 밖에 놓아두었다가 밤에 냉장고에 넣고 맛있게 익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지난해에는 오전 내내 쪽파를 다듬고 점심 먹은 후에 버무려야 했지만, 이번에는 얼추 한 시간 만에 파김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맛을 보시고 파김치가 맛있게 됐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요리에 ‘요’자도 몰랐던 내가 때때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실수도 하면서 시간을 들이다 보니 어느덧 파김치도 수월하게 담게 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랍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늦은 저녁때 초인종이 울렸다. 앞집에서 시골에 갔다 오는 길이라면서 연한 상추 한 줌과 파전이라도 부쳐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깔끔하게 다듬어진 쪽파 한 단을 주고 갔다. 시골 텃밭에서 뜯어 온 상추도 고마웠지만 수고스럽게도 깔끔하게 다듬어진 파는 너무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앞으로 파를 볼 때마다 오늘 일이 떠올라 가슴이 뭉근해질 것 같다.
오늘은 파를 다듬는 속도에 스스로 놀라 감탄하고 파김치 맛에 감탄하고 은연중에 늘어가는 요리 솜씨에 감탄하고 이웃의 정에 감탄한 하루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비록 오늘 사소한 일 중에 터져 나온 감탄일지라도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