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리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그 어떤 예고된 만남보다 더 반갑고 큰 기쁨을 준다.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그러한 반가운 만남을 늘 기다린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리움도 자라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리움이 숙성될수록 기다림이 현실이 될 때 반가움은 배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움의 대상이 꼭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오늘 말하려는 기다림은 풍경과의 만남이다. 나는 평상시에도 풍경이 나를 불러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속에 내 삶을 지탱해 줄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떠한 예고도 없는 즉흥적인 부름이라서 늘 기억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마침내 오늘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풍경과 조우하게 되었다.
집을 나서면 마주하게 되는 공터에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는 벚나무 한 그루가 있다. 며칠 전부터 벚꽃이 만발하여 즐거움을 주더니, 오늘은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풍경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부름이지만, 세상 그 어떤 외침보다도 또렷하고 선명한 부름이었다.
나를 불러 세운 그 풍경은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을 자아낼 정도로 몽환적이었다. 햇볕과 바람에 떠받쳐 낙화하는 벚꽃 잎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려서 내가 어떠한 자세로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넋을 놓고 그 풍경 속에 빠져들게 했다.
풍경 속에는 단순히 벚꽃만 날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 속에는 누군가의 한 생애가 날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꽃잎이 날린다고 해서 그토록 아름답고 성스러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최면에 걸린 듯 벚꽃 날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마치 시간이 멈춘 풍경 속에 들어와 오롯이 특정한 누군가와 둘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점점 바람이 잦아들자 한정 없이 날릴 것만 같았던 벚꽃의 낙화도 이내 잦아들었다.
어떠한 소란도 침범할 수 없는 풍경 속에서 화려한 유영을 끝낸 벚꽃 잎들은 마침내 수많은 별처럼 땅바닥에 내려앉아 우주를 그려 놓았다. 그 그림은 마치 쇠락한 모든 꽃은 우주에 묻힌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