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1
가끔 생각이란 것이 들판을 살며시 지나가는 바람이 나를 스치듯 다가오기도 한다. 또는 보이지 않고 대기 속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던 것이 바람이 그치는 순간 고요한 공간을 유유히 낙하하는 티끌처럼 내 어깨 위에 내려앉기도 한다. 오늘은 파김치가 그렇게 내게 내려앉았다.
평상시에 밥을 먹을 때는 번잡스럽지 않고 간소하게 먹으려고 한다. 반찬을 이것저것 차려놓고 먹는 것이 번거롭게 생각된 적도 있었다. 반찬을 이것저것 차려놓고 먹다 보면 많고 적고 간에 남은 반찬은 버려지게 되고 설거지할 그릇도 많아진다. 또한 음식을 너무 많이 먹다 보면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인지 음식이 나를 먹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배가 빵빵할 때까지 먹는 수가 있어서 언젠가부터는 음식을 모자란듯하게 먹는 습관이 생겼다. 먹는 대로 살로 가는 체질이라 체중이 불어나는 것은 금방이나 체중을 줄이는 데는 아무리 땀을 흘려도 안개 속이라 먹는 음식량을 줄이게 되었다. 이때 구강기에 고착된 경우 음식, 음주, 흡연에 집착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떠올리며 나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음식에 연연하지 않고 양을 줄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될 수 있으면 음식 낭비가 되지 않도록 간소하게 먹고자 하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평소 소식(小食)을 하고 있지만, 가끔 예전에 맛보았던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러면 평상시에는 먹지 않던 것이라 맛보고 싶은 욕구가 일면 먹어줘야 한다. 내 경우에는 고급 호텔에서 먹었던 스테이크나 비싼 가격의 와인이나 랍스터 요리 같은 것들은 추억을 일깨울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 뭐 비싸고 거창한 요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라 대개는 소박한 것들이다.
며칠 전에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식료품을 고르고 있는데 ‘파김치’라고 적힌 제품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날이라면 그냥 지나갔을 테지만 그날은 왠지 군침이 돌고 갓 지은 밥에 올려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내 안의 깊은 곳으로부터 스멀스멀 피어 올라왔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 봉지를 들어보니 양은 한 주먹도 안 되고, 값은 비쌌다. 시장에 가면 반찬가게에서 파김치 만 원어치를 주문하면 인심 많으신 사장님께서 푸짐한 덤과 함께 담아주기 때문에 담기 전에 비해 양이 꽤 많아진다. 요즘 같을 때 반찬 사러 전통시장까지 가는 것도 그렇고 해서 그냥 마트에서 손에 들린 파김치를 사고 말았다.
집에 와서 포장지를 뜯어 반찬 통에 담고 갓 지은 밥 위에 올려 기대에 찬 채로 입에 가득 넣고 그 맛을 음미하는데 추억을 되살리기는커녕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스러운 맛뿐이었다. 파김치가 너무 익은 상태였고 파의 섬유질이 너무 질겨서 씹다 보면 질긴 실이 되어 이 사이로 끼어 들어갔다. 참 아쉬운 맛이었다. 내가 먹는 형편없는 파김치의 맛이 앞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파김치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 파김치에 대한 기억을 하루빨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파김치’를 검색해서 ‘파김치 담그는 법’을 시청해 보니 쉽게 따라 할 것 같았다. 마침내 파김치를 직접 담기로 결정했다.
마트에서 쪽파를 구할 수 없어서 시장을 지날 때 혹시나 해서 들렀는데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자판에 내놓고 파는 다양한 채소 중에서 파 한 단을 찾아내 곧바로 구입해 돌아왔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파 한 단을 다듬고 소금물을 살짝 뿌려서 약간 동안 절여놓았다. 그러는 사이에 고춧가루, 멸치 액젓, 매실액, 찹쌀 풀(찹쌀가루가 없어서 부침가루 약간으로 풀을 쑤었다.), 맛술, 올리고당, 깨를 각각 적당히 넣고 잘 썩어 양념을 만들어 놓았다. 파를 물로 씻어낸 다음 커다란 대야에 넣고 양념과 함께 버무렸다. 잘 버무린 후에 맛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궁극의 파김치의 맛을 되살릴 수 있는 맛이었다. 어머니께서도 파김치 맛을 보시고 너무 맛있다고 하셨다. 익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면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셨다. 이렇게 해서 나의 유튜브 스승님들의 도움으로 만든 파김치를 하얀 쌀밥 위에 올려서 먹거나 라면 먹을 때 함께 먹음으로써 파김치를 ‘추억의 맛’ 범주에 계속해서 올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