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제 흉터를 소개하겠습니다

by 이광

누구나 몸에 흉터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연 없는 흉터 또한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저도 얼굴에 흉터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오른쪽 눈썹 위에 반달 모양의 흉터가 있습니다. 지금은 가까이 봐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지요. 하지만 유독 흉터가 신경 쓰였던 적이 있습니다. 스무 살 무렵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잘 알아보지도 못할 흉터가 제게는 엄청 크게 느껴졌던 때였지요. 그때는 이성을 만나는 기회가 많아서인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이 흉터가 생기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비교적 차분한 아이였어요. 부모님께서 정미소를 운영하느라 바쁘셨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숙제를 먼저 하고 부모님 심부름도 하고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 위에 있는 저수지에 가서 놀기도 하면서 비교적 말썽이란 걸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동네에 사는 후배가 마을 뒷산에 있는 팽나무에 올라가서 열매를 따 먹자고 하더군요. 평상시 같았으면 집에서 할 일이 있다고 거절했을 텐데 그날은 웬일인지 그러자고 했습니다. 꼭 사고가 날라치면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딱 맞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집에 가방을 두고 정미소에 들러 여전히 바쁘신 부모님께 인사드린 후에 후배 두 명과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나를 이끌고 간 곳에는 큰 팽나무가 두 그루 있었습니다. 내 팔로 팽나무를 안으면 두 뼘 정도가 모자랄 정도로 크고 오래된 나무였지요. 나뭇가지마다 잘 익은 열매들이 대롱거리며 열려 있었어요. 열매는 작은 블루베리처럼 생겼고 맛도 얼추 비슷한 단맛이 납니다. 우리는 팽나무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나무 아랫부분에는 잡고 오를 적당한 가지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등을 밟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두 명이 올라가서 열매를 따 먹고 나머지 한 명은 나무에 올라간 두 사람이 열매가 많이 붙어있는 가지를 부러뜨려 던져주면 그 가지에서 열매를 따 먹었지요.


나무에 올라간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열매를 찾아 더 높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기까지 했어요. 그날따라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오고 달콤한 열매도 손만 뻗으면 언제든지 따 먹을 수 있었으니, 마치 신선놀음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행복한 기분으로 다람쥐처럼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리다가 문득 앞쪽에서 열매가 무성하게 열린 나뭇가지가 하늘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나뭇가지를 잡으려고 앞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죠. 그러다 ‘뚝’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나는 아무런 기억이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을 생각해 보니 마치 순식간에 암흑 속에 던져져 끝없이 침잠해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서쪽 하늘로 내려가던 햇빛이 내 눈 속으로 스며들면서 제 의식이 마치 가스등처럼 서서히 밝아졌습니다. 서서히 주변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죠. 가장 먼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깨우고 있는 후배들 소리가 들렸어요. 내 팔과 다리를 주무르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내가 밟고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내가 깨어나지 않자 내 이름을 부르면서 깨우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의 부축으로 힘겹게 일어났는데 무척 어지러웠고 두 팔은 감각이 없었어요.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후배의 집에 들어가 물을 마시고 거울을 봤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얼굴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두 팔은 내 의지대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때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후배에게 저희 부모님께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죠.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부모님은 저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에 두 팔은 골절이 되어 석고붕대를 해야 했고 이마는 깊게 파여 열 바늘을 꿰매야 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엄하게 꾸지람을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한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러다 집에 다 와서야 큰일 날뻔했다고 하시며 당분간 불편하더라도 죽다 살아났다고 생각하고 참아 보라고 하시더군요. 속으로 야단 안 맞아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지나갔지만, 저의 혹독한 반성의 시간은 한 달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그날부터 한 달간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있어야 했으니까요, 사고 이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먹는 것, 씻는 것, 옷 갈아입는 것 같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엄청 큰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별일 아닌 일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시련의 한 달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부러졌던 팔은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마에 난 흉터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흉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흉터를 가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고 때로는 염색도 했습니다. 하지만 흉터를 가리려고 신경 쓰는 저에게 미용실 원장님께서 이마를 드러내면 더 잘 어울린다는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흉터가 잘 보이지도 않지만, 설령 흉터가 잘 보이더라도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자신감도 있어 보이고 전체적으로 본인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귀가 조금 얇은 편이라 그때부터 이마를 가리지 않는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흉터에 대해 신경 쓰는 일도 줄어들고 가끔 흉터를 알아보는 사람의 말에도 ‘죽다 살아난 흔적’이라고 말하면서 가벼운 대화 소재로 삼을 수도 있게 되었죠.


아무리 티끌만 한 흉터라 할지라도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의 눈에는 엄청 크게 보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람의 장점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단점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장점은 못 보고 티끌만 한 단점만 현미경으로 보는 듯이 두드러지게 보이게 될 테니까요.


시간이 흘러 제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가진 흉터가 이마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 안의 보이지 않았던 흉터를 발견한 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내 안의 흉터를 마주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마에 난 흉터처럼 가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크게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흉터는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흉터는 그림자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림자는 나의 허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자를 가리거나 떨쳐버릴 수는 없는 법이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이 말에는 나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흉터와 그림자까지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keyword
이전 14화벚꽃 날리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