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한 마리가 도로를 가로지르는 전깃줄에 앉아서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울어댔다. 집 앞 소나무에 자주 깃드는 참새나 까치에 비하면 까마귀는 몸집이 참 크다. 때론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을 보면 독수리를 보는 듯하기도 하다. 힘도 세서 고깃덩이나 생선토막도 쉽게 물어 나른다. 그들도 환경에 적응해서 사느라 편의점 앞 테이블에 손님들이 먹다 놓은 컵라면이나 김밥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까마귀를 예전에는 영화 속 아니면 보기 쉽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어디 마을 전깃줄에 까마귀 떼가 내려앉아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새까만 까마귀들이 마을 들판을 뒤덮고 있는 모습에서 아름답다든지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조금은 괴기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왜 까마귀에 대해 이러한 편견을 갖게 된 것일까.
예전에 사람들은 까치와 까마귀를 자주 비교하곤 했다. 까치는 길조로 여기고 반면에, 까마귀는 흉조라고 여겼다. 까치는 설날 노래에도 있듯이 그만큼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길조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까마귀는 한국의 전역에 걸쳐 번식하는 텃새임에도 불구하고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새가 아니었고, 또 완전히 새까만 외모에서 풍기는 왠지 으스스한 느낌 때문에 아마도 흉조로 여겼지 않나 생각한다.
만약 까마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무척 속상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졸지에 불운의 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들이 알든 모르든 간에 그들의 반응을 짐작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씌워 그 사람이 나타나면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리다가 그 사람을 따돌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을 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과연 그 사람의 반응은 어떨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까마귀는 영리한 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몰려다니는 까마귀 무리에는 리더가 없어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개개인의 가치와 다양성이 인정되고, 획일적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잘 어울리는 집단이 아닌가 생각한다.
까마귀가 들어간 시조가 있어 떠올려 보았다.
까마귀 검다 하고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에서 중요한 것은 외면이 아니고 내면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외모와 관련된 영어 속담이 하나 생각난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겉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 물론 여기서 판단의 대상에는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포함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 물건을 고를 때도 외형이 좋아 보이는 것을 우선 선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아마도 매스컴의 영향이 사람들의 뇌리에 미친 결과이지 않나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 광고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말끔하게 깎아 놓은 조각품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나오다 보니 그것을 보고 사람들의 뇌리에 선망의 대상으로 각인되었을 수 있다. 사람을 채용할 때도 그렇게 각인된 외모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생기고 못생겼다는 기준이 과연 인간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신이 원하는 외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고유한 외모를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고 편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상시에 외모에 의해 비이성적인 편견을 내포하고 있는 투의 언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
요즘에는 외모를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에 대해 외모로 평가하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의 평가 기준이 어디서 왔고, 나 또한 누군가에 의해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평가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과연 내가 가진 외모에 대한 인식이 올바른지 인간적인 면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내면의 충실함이 없는 외모 지향은 결국 자신을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까마귀는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크게 한 번 울어 젖히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