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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Aug 22. 2017

엽서 같은 소식


며칠 만에 집에 돌아왔다. 집을 비워 두면 사람이 머물 때 나는 생활의 냄새들이 사라진다. 희미한 음식 냄새, 빨래 냄새, 체취 같은 것들이 날아가고 빈 공간의 냄새만 남는다. 정체되었지만 탁하지 않은 냄새. 나는 그것을 '기척 없는 냄새'라고 부르고, 좋아한다. 오늘 그 냄새를 맡고 안심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불을 켜고, 화분이 시들지 않았는지 둘러보고, 욕실 문을 연 채로 샤워를 했다.


사실 이 집에는 나 말고도 숨 쉬는 것들이 있다. 작고 투명한 거미가 두어 마리 살고 있고, 지난주에는 거실을 가로지르는 그리마를 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긴 다리를 가진, 돈벌레라고도 하는 곤충이다. 예전엔 어떻게든 잡아서 밖으로 버렸는데 이번에는 그냥 지켜보았다. 내가 본 그리마 중에 가장 큰 녀석이라 엄두가 안 나기도 했지만, 아주 조금 반가웠다. 이 집에 나 말고도 움직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자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이대로 집을 공유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이틑날엔가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한 번 보았고, 침실 문짝 뒤에 숨어 있다가 어쩔줄 몰라하며 에어컨 뒤로 가는 것도 보았다. 지금은 어느 구석에서 뭘 하고 있을까. 문득 그리마의 수명이 궁금해진다. 우리가 언제까지 함께 살 수 있을까. 평화로운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 여름은 원없이... 아니 원없이까지는 아니고, 할 수 있는 만큼은 들꽃을 잘라 썼다. 버려진 논, 뒷산, 쓰레기장 같은 공터, 개천가, 텃밭 울타리, 임도 주변 어디든. 주인이 없는 풀과 꽃을 만나면 즐거운 마음으로 잘라왔다. 내가 기른 백일홍도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며 여름 한 철을 함께했다. 뿌리가 잘린 꽃은 곧 죽는다는, 절화를 다루는 일에 대한 묘한 죄의식이랄까... 그런 마음도 많이 괜찮아졌다. 아름다운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조금은 벗어났다. 내 마음과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흔들리면 흔들렸다가 다시 돌아오면 된다. 가끔은 괴상하고, 눈물이 날 것 같고, 그 너머를 상상하게 되는 꽃을 할 것이다. 오랜만에 전하는 엽서 같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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