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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오 Mar 13. 2020

플라톤 '동굴의 비유'와 이데아설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플라톤이 말한 참다운 존재는 무엇일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이데아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감옥

 중세의 철학은 크게 고대의 철학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거기에는 또한 기독교의 영향이 무척 크게 작용했다. 

 이를 시작하기 전에 플라톤의 이데아 설을 우선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플라톤의 <국가> 편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은 눈으로 만물을 보고 살지만 실은 감옥에 사는 죄수들과 같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다운 존재인 이데아를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이데아는 감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성적으로 사유되는 것이다. 지적으로 사유되는 이데아야 말로 참다운 존재이다. 세상의 사물들은 이데아의 복사 내지 모방이다. 이데아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선(善)의 이데아이다. 

고양이와 그의 그림자

플라톤의 대표적인 대화편 “국가(Republic)”에는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죄수들이 사는 감옥 동굴이 있다.  태양 빛이 비치지 않는 동굴 속에서 죄수들은 태양과 현실의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그 그림자만 보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간수의 인도로 동굴 밖으로 나간 죄수들은 현실의 사물들을 직접 보고 아름다움에 놀란다는 이야기이다. 이 것은 하나의 비유로서 그림자의 형상은 육신의 눈으로 본 사물들을 말하고 태양과 밝은 사물들은 실은 영혼의 눈으로 보여진 참다운 존재 즉 이데아 세상을 의미한다. 이데아는 달리 말해 선 자체(the good itself) 혹은 미 자체(the beauty itself)라고 한다.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는 사물들은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눈으로 보는 사물들은 가시(可視)적인 존재(the visible things)이고 이데아는 가지(可知)적인 존재(the intelligible things)를 말한다. 이데아를 형상(Form)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사물들은 다 불완전하고 파괴되고 소멸되는 것이며 따라서 불완전하다. 이는 우리의 현실 경험에서도 쉽게 체험하는 사실이다. 어떤 미인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고왔던 얼굴이 금방 추하게 될 수 있다. 그 반면 미(美)의 형상은 - 만약 그런 것이 있다고 하면 - 오래간다. 불변적이다. 물론 플라톤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이데아 혹은 현상이 과연 플라톤의 말처럼 어디엔가 존재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고 비판도 많다. 그러나 이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서 발전하고 오늘날에도 학문의 기초가 되는 여러 개념 들 즉, (보편적) 개념, 본질, 정의(definition) 혹은 집합(set) 개념 등으로 살아있다. 

 이데아설에 따르면 위의 도표와 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미의 형상을 닮기 때문이고 이를 다시 말하면 그가 미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름다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아름다운 원인은 그들이 모두 미의 형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학설이다.        

플라톤이 상식과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 형상을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진실한(real) 존재로 본 까닭은 그의 선배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받아들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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