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은 뭔가 옛날 한국의 느낌이다. 내가 느끼는 세상은 돌진의 허용이 매우 제한적이고 관료주의의 칸막이가 부서와 관할 간에 켜켜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관료주의의 철옹성과도 같은 독일에서 자라났으니 그렇게 인식할 만도 하다. 그래서 내 안에 과거 대 현재, 독일 대 한국의 상반된 느낌들이 뒤섞여 일시적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흡사 정주영 회장이 영국 투자자에게 거북선 지폐를 보여주며 철갑선을 영국보다 일찍 만든 나라에서 온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호언장담하는 패기가 떠오르는데, 오늘날에 누가 그런다고 상상하면 아주 불가능한 장면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봐도 그때의 호기가 2020년에 불가능한 건 아니다. 나도 나름 "어른의 나이"가 되어보니까 제자를 만나거나 젊은이를 만날 때, 뭔가 영특하거나 번뜩이는 특별한 것을 내심 희망하고 찾게 되니 말이다. 돈의 흐름을 아는 자들이라면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지 않을까. 다만 개인이 호기를 발산할 기회의 창구가 그때는 전국적 결핍 등의 문제로 좁았다면, 오늘은 물심양면의 과다 투여가 초래하는 면적 공급 부족의 의미로 좁아졌을 뿐이다. 잠재적 포스트 정주영이 한국 어딘가에 자라나고 있다 해도 모두의 출발 조건이 그 시절에 비해 높아짐에 따라서 경주에 참가하는 경쟁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겠지 않겠나. 열심히 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든지. 너무 잣대를 높이 잡으면 비현실적이니까 (기회의 평등과 별개로 결코 모두가 정주영일 수는 없으니) 개천에서 용 나는 기준을 조금만 낮춰보자. 치과의사 정도로 말이다. (설마 이 말을 치과의사 비하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오늘의 기사는 어떤 직업군의 한 명이 자신의 수입 구조를 직접 설명하는 흥미로운 시리즈 중에서 발췌했다. 독일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이 말은 진심이기도, 자의식 충만한 그들을 놀리는 것이기도 하다) 바이에른의 수도인 뮌헨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주인공을 만나보자. 그의 나이는 만 36세다. 월 1만 1천 유로 정도를 본인에게 지불하는데, 이는 현재 시각으로 천 사백 만원쯤 된다.
직업: 저는 일반 치과 의사입니다. 특수 전문 분야가 없다는 뜻입니다. 대진 기간이 끝나던 바로 다음 날, 동료의 의원을 인수해서 자립해버렸습니다. 현재 저는 아홉 명의 직원의 사장입니다. 저희 의원은 치과 포트폴리오를 전편적으로 제공합니다. 임플란트를 심고, 치근을 치료하고, 의치도 다룹니다. 의치를 점차 직접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치과의사인 동시에 치과기공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교육: 5년 반 동안 치의학을 전공한 후에 국가고시를 치렀습니다. 그 후 2년 간 대진 의사로 일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제 학업 진로가 굉장히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하루 몇 시간이나 컴퓨터로 노는가 하면, (*5학년에서 9학년까지만 교육받은 후 졸업하는) 실업계 중학교도 다녔었고, 학교도 여러 번 옮겼습니다. 9학년이 되자 이미 만 18세였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린 건 꽤 늦은 때였습니다. 늦게나마 야간학교 등의 2차 교육 조치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과 수능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치의학을 전공했습니다.
근무 시간: 독립적 치과 의사로서의 제 근무 시간은 항상 다릅니다. 치료에 쓰이는 순시간은 매주 34시간입니다. 매일 준비와 마무리에 30분 정도가 추가 소요됩니다. 의원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여러 다른 의무가 발생합니다. 지금은 리노베이션 중인데, 주 당 60-70시간을 일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상기간에는 45시간에 가깝습니다. 덧붙이자면 귀가 후 쉰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의원을 인수했던 시절 하루에 3시간을 잤는데, 자다가 깨서 직원 관리, 미래 계획, 막대한 대출 등의 고민에 잠을 못 이뤄서 그랬습니다. 지금도 딱히 쉴 수는 없습니다. 제 심장 전문의에 의하면 혈압이 높고 수면 장애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경제적 이득 대신에 건강을 바치는 면은 있어요.
수입
세전: 작년 제 의원의 수입은 약 86만 8천 유로였고 즉 월 7만 2천 유로 (현 시각 약 9000만 원) 정도 됩니다. 많다고 느끼시겠지만 지출이 많아요. 직원, 임대, 시설, 전기가스, 보험, 검사실 사용료, 보수 등입니다. 타 치의술 검사실에서 제작되는 작업이 큰 부분인데요. 그리고 비싼 기기의 세금 및 대출을 계속 지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초에 의치를 디지털로 재건하는 기계를 구매했어요. 약 6만 5천 유로가 들었고, 유용한 투자였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인공 치관 같은 건 거의 직접 제작하고 외부 치과기공사에게 외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입이 확실이 나아졌죠. 제 본인의 수입은 매 달 약 1만 1천 유로를 지급합니다. 나머지 돈은 사업 계좌에 만일을 대비해서 넣습니다. 갑작스러운 보수 공사라든지요.
세후: 월총 6000유로 정도가 제 수중에 남습니다. (현 시각 약 780만 원)
지출
집세: 아내의 집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집세는 적게 냅니다. 그녀는 몇 년째 그곳에 살고 있고 계약서가 그대로예요. 그래서 함께 67제곱미터에 난방 포함 890유로만 내며 삽니다 (현 시각 약 110만 원). 뮌헨에서 그 정도면 완전 대박이죠. 의원 임대료는 월 2800유로를 지불합니다.
식품 및 외식: 거의 이틀마다 외식합니다. 한 번에 60유로 정도인데 그럼 혼자서 월 900유로가 됩니다 (현 시각 약 120만 원). 점심은 거의 안 먹고 아침도 거르기 때문에 저렴한 편입니다. 고로 월 총 1000유로가 식비로 쓰입니다.
교통: 의원으로 가는 10킬로미터의 구간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자전거로 완주합니다. 크게 보수가 필요할 땐 자전거를 정비소에 맡깁니다. 하지만 타이어 교체 같은 건 그냥 직접 하죠. 그리고 아내와 함께 나눠 쓰는 자가용이 있어요. 그러면 보험, 정비, 기름값이 소요되죠. 차를 많이 타기도 하고요. 제 분담을 계산하면 자전거를 포함해서 월 300유로 정도네요 (현 시각 약 40만 원).
보험: 이건 정확히 알아요. 월 775유로입니다. 그중 580유로는 의료보험이고요. 나머지는 직업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를 위한 직장 이행 보험과 화재 보험, 도난 보험입니다.
대출: 저는 거의 직업 관련 대출밖에 없어요. 현재 25만 유로 정도이고 (현 시각 약 3억 원) 최근에 11만 유로를 더 대출했어요. 총 36만 유로네요 (현 시각 약 4,6억 원). 기기와 단골 환자를 포함한 의원의 인수는 32만 유로에 이뤄졌어요. 그중 일부분은 이미 상환했고요. 의치 기계에 6만 유로가 들었고 7만 유로는 새 엑스레이 기계에 썼어요. 조만간 환자용 의자도 하나 더 구매할 건데 그건 4만 유로 정도 들 거예요.
개인 노후 보험료: 없습니다. 의사들은 국가 노후 보험에 납세하지 않아요. 대신 자기들끼리 뭔갈 만들어서 의사들만을 위한 노후 보험이란 게 있는데요. 저는 못마땅하게 봅니다. 연대 시스템에서 탈출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바이에른 주 의사 보험에 납세하고 이득을 봅니다. 작년에는 3만 유로 정도를 납세했습니다 (약 3천4백만 원). 그로 인해 노후에 국가 보험보다 높은 지급을 받게 되죠.
전화 및 인터넷: 월 150유로 정도가 개인 내지 사업 용도의 휴대폰 및 인터넷 사용료로 발생합니다.
정기구독료: 거의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원증 하나예요. 그걸 가지고 의원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특정 업데이트를 받습니다. 제 유일한 개인 정기구독은 게임 World of Warcraft 계정이고 월 12유로입니다.
스포츠: 축구팀 회원이고 가끔 실내 축구를 하는데, 무릎이 안 좋아서 거의 못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트레이너와 함께 테니스를 해요. 월 총 400유로가 들죠. 그리고 또 비싼 운동 취미가 있는데, 스키예요. 성수기에 20일 정도 오스트리아로 타러 가요. 거기 스키 이용권이 하루에 60유로예요. 그것만 해도 연 1200유로죠.
의류: 정말 필요하면 사요. 그럴 때는 가격도 안 보고 비싼 겨울 코트 같은 건 그냥 사요. 월 100유로 정도 쓰는 것 같아요.
케어: 평소 사용하는 제품과 미용실을 합산할게요. 그리고 마사지를 자주 받으러 가는데, 치과 의사들은 등에 부담이 많이 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실 항상 등이 아파요. 아팠다 말았다 해요. 대충 월 100-150유로 정도가 나오겠죠.
여가: 여행을 좋아해요. 비싸죠. 마지막으로 아내와 간 곳은 모리셔스. 일 년에 한두 번은 이렇게 제대로 여행을 떠나요. 그리고 가끔 짧게 여행도 가는데, 연간 내가 부담하는 여행비는 약 5000에서 6000 유로겠고, 즉 월 500유로 정도겠죠.
결국 남는 금액:
월 6000유로가 세후에 제게 있고 그중 4000유로 (500만 원)을 지출합니다. 나머지 2000유로는 저축해요. 그걸로 나중에 근처에 집이라도 살까 해요.
사실 큰 의미가 없는 비교대상이다. 교육 진로 전개부터 여러 비용과 보험 체계까지 한국-독일의 무수한 환경 차이가 눈에 띄지만, 이래서 한국은 안된다 식의 결론은 내릴 수 없다. 이렇게 정성스레 번역한 걸 읽고도 결론을 그렇게 내린다면 다분히 의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국과 독일 사이의 비교는 건설적이어야 한다.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을 비교해서 무엇을 도출해야 할지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겸해야 허락되는 것이라고 나는 다소 숭고하게 생각한다. 듣고 있느냐, 좌우를 막론한 정치인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