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을 보내며

by 그린

딸애가 영화표를 얻어 왔다. 라디오 응모 당첨 됐다면서

그 이름도 유명한

슈퍼맨



어릴 적 슈퍼맨은 나의 영웅, 우리의 영웅이었다.

흑백티브이로 본 슈퍼맨

그때는 아마 연탄을 밤에 나가서 갈아주어야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었지,

연탄이 오래가야 8 시간정도 탈 수 있어서 늦은 밤 갈아주던지 아님 새벽에 갈아주어야 불이 꺼지지 않았다.

뭐 프로메테우스의 불도 아니고 연탄물 꺼트리지 않기가 주요한 살림 덕목 중 하나였으니까

새벽에 일어나기가 싫다면 밤늦게 갈아주던 연탄, 연탄불 갈고 들어오는 엄마 곁에서

매캐한 냄새 맡으면서 뜨슨 방 안에서 보던 주말의 명화

그중 나의 기억 중 최고 중에 하나로 남는 그 영화 슈퍼맨

망토 한 장 걸치고 화려한 맨해튼 고층 건물을 날아다니는 그 모습은 우아하고 정의로움 그 자체였다.

저런 개체가 있는 세상은 얼마나 정의롭고 공정할 것인가?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

그뿐인가 , 영화 속 나타나는 사소한 장면들

우리는 귀하게 마시는 커피를 사무실 구석에서 옹달샘 퍼먹듯이 마구 퍼 마시는

저 풍요로움, 눈 똑바로 뜨고 얘기하면 눈 깔으라는 소리부터 먼저 들었는데

혹여 대화의 내용이 듣는 상대방의 생각과 다르면 바로 육체적이든 언어적이든

너 나한테 대드냐 , 강 펀치 날아오던 그 시절..

영화 속 주인공들이 남녀 구분 없이 제 이야기를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고 얘기하는 그 신비로움에 가까운 정당함이란 , 슈퍼맨이 지켜주고 있어서인가?

아무리 어려워도 지 할애기 다하고,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강아지를 지키기 위해서 나서도

절대 죽지 않는 저 은혜로움 다 슈퍼맨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축복받은 인종인가 미국인들은..

고로 그 이후로는 길거리 돌아다니다 슈퍼맨 비슷한 인종을 보면 마치 그럴 거 같아 보이고

마냥 훌륭하고 좋아 보였더랬다.

빨간 망토도 슈퍼맨 S자도 미국인도 다 멋져 보였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많은 것이 변했다.

연탄도 사라지고 , 우리 사무실에도 옹달샘 커피 정도는 있다.

단지 잠이 안 와서 딱 두 잔밖에 못 마신다는 제한은 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래서 슈퍼맨을 미국을 좋아했구나

물질적 풍요로움과 그에 기반을 둔 정서적 정신적 안정감.

이제는 우리 사회도 그런 것들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슈퍼맨의 사회도 꼭 그 영화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흘러넘치는 정보덕에 DC가 여기에 사활을 걸었단 것도 알게 되고

이 영화에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 손끝으로도 알게 되었다.

아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여기다 썼을까?

우리 모두 빨간 빤스 아저씨가 지구를 구하지 못한다는 걸 아는 데

그냥 돈 많은 회사 홍보영화 같은 느낌인데

이제는 감흥이 없다.

그 옛날 순진한 로맨스가 가소로워서 도저히 보기가 어렵다.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감동하기 어려운 지금은

더 똑똑해진 걸까? 더 약아진 걸까?


그 옛날 슈퍼맨이 그립다.

마냥 좋아하던 그때의 나도 그립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선행을 베푸는 그도 없고

그런 행동을 의심하지 않고 선의로 바라보는 눈도 없다.

이제는 의심 없이 좋아했던 그 사랑 고이 접어 넣어두고

슈퍼맨을 보내줘야겠다.

그런 사람 그런 외계인 여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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