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임에서 들은 질문이다.
음~~~~~~ 그러니까 여기서 내 애기 다 쏟아내라고? 한 시간 아니 백 시간,
그 유명한 말로 책 한 권 써 내려가도 모자랄 나의 시련들. 여기서는 길면 3분 만에 논리 정연 귀에 쏙쏙 들어가게 써야 아니 말해야 되는데
명량한 목소리로 누구나 이해가게 만들 내 시련은 없다.
할 말이 없다.
과거의 시련은 과거의 것이기도 하고, 나는 시련을 이겨낸 적 없다.
그냥 견디고 살아낸 것뿐이다.
지금의 시련은 부단히 그 해결책을 찾아내느라고 머리가 복잡하다.
생각에 생각을 꼬리를 물다 보니 문제가 뭔지도 모를 지경이다. 너무 많고 크다.
미래에 예측되는 시련도 있다. 그런 지금의 문제가 해결이 되면 아마도 같이 해결될 것이다.
어느 한순간도 고민 없이 편하게 보낸 시간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시련이 해결된 적이 있나 찾아보면
그 당시 생각했던 가장 큰 문제가 풀리면 그 직후에는 편안함을 느낀 것 같다.
암일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종양이거나
이사 갈 집이 없어서 고생했는데 어느 한집이 운명처럼 나타났을 때
대출금 상환날짜가 돌아오는데 다른 대출이 승인되어서 돌려막게 되었을 때
어딜 가나 어디로 써야 되나 고민고민 할 때 다행히 별짓 안 해도 그저 고만고만하게
합격되어서 어딘가로 들어갈 수 있을 때
가만 생각해 보니 시련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가벼운 어려움도 많았구나
그 시절에는 세상 둘도 없는 나만 질어진 무거운 고난 같았는데
그 정도는 아닌 이겨낼 수 있는 어려움이었군
살면서 제일 기쁠 때도 아니고
살면서 제일 편안함을 느낄 때도 아니고
뭐 이런 질문을 해서 곤란하게 만드나 생각했는데
깊게 한 번 더 생각하니 ,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때는 세상 어려운 고난이었는데 그걸 지나고 나니 죽을 만큼 어려운 일도
주변 시끄럽게 나 괴롭다고 꾁꾁 거릴일도 아니었다.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난 왜 그렇게 괴로워했을까?
아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할까?
아슬아슬 그때그때 터진 문제들을 봉하면서 나아간다.
인생이 한벌의 코트라면 여기저기 꿰매고 묶고 메꾸어서 너덜너덜하지만
단단하고 두껍게 여미어진 모양이랄까?
이미 새로살때의 쨍한 칼라는 없어졌지만
다시 꿰매면서 새로운 색과 모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코트
아직은 입고 다닐만하다.
어쩌면 명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살만하고
내 생을 살아갈 힘은 나에게도 있다.
좀 편하게 맘먹고 그럴듯하게 즐겁게 지내보자.
그 어려운 한 시간 대기 옥수수 맛집 줄 서기를
끝내면서 양손 가득 옥수수 들고
행복한 맘으로 가볍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