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 (성서와는 전혀다른 설)
구약성서에 이 둘의 이야기가 나오다고 한다. 나는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너무나 유명한
이 이야기는 안다. 얼핏 주말의 명화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니 참 어설퍼 보였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걸 믿었다니
차라리 신에게 기도를 하고 선택받았다는 게 더 신빙성 있는 애기 아닌가?
찾아보니 히브리족과 팔레스타인족과의 이야기이다
이 민족 간 갈등은 정말 오래된 이야기기구나, 앞으로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저 갈등
인간의 본성은 결코 바뀌지 않고 돌고 또 돌면서 반복되는 건가 보다.
십 년 전만 해도 나는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모두 다 이렇게 많게 태어난 줄 알았다.
다소 반 곱슬이었던 나는 뻗치는 머리가 신경 쓰여서 질끈 묶고 다니고는 했다. 곱슬에 많은 숱은
정돈이 되기 쉽지 않다. 늘 삐져 있거나 부스스한 상태이다.
학교에 가면 한 마디씩 놀리는 친구가 꼭 있었다. 자다가 그냥 나왔냐, 머리를 빗고는 다니냐
아무리 빗어도 젤을 발라도 원래성질대로 삐지는 머리칼, 그런 머리칼이 불만이었다.
결혼을 해서는 살림과 육아, 일까지 너무나 바빠서 , 머리를 밀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드는 날도 있었다.
음식이나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들이 보기 싫고 어떻게 해도 부스스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정돈되어 보인적이 드물었다.
좀 귀찮기도 하고, 맘대로 안되어서 신경질도 나고 쫑쫑 묶는 것이 최고의 방법
그때는 그랬다. 넘치는 것들이 다 귀찮았다, 어찌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늘 내가 가지고 있을 듯이 보였어서 , 하찮아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서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빠지기 시작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손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주르륵
머리카락도 빠지고 , 힘도 빠지고, 기억력도 없어지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없어지는 것들이 많아졌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다가 얇아진 머릿결, 자꾸 잃어버리는 낱말들을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나 삼손이었어? , 나는 육체적 힘은 없어도, 기억력과 어휘력은 좋은 편이었는데
머리카락에 내 힘이 들어있었네, 이렇게 없어지고는 힘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그거였네 , 그 옛날 히브리사람들도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가좌지구에서 그걸 느끼고 살았네
그래서 삼손이 나왔군, 정말 통찰력 있는 이야기였었군.
한편으로는 참 시간이 무상하다 , 2000년 전 인간이나 지금의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젊고 어릴 때는 누구나 다 장사다 , 그 몸 안에 꽉 찬 에너지가 있다.
몸이 크던 작던 예쁘던 못생겼던 그들만의 빛나는 보석이 있다.
그때는 모르고 마구잡이로쓸 뿐이지만
내 숱 많았던 머리도 그런 것 같다, 만족할 줄 모르는 , 세상 이치 모르는 주인한테
구박만 받다가 어느새 내게서 떠난 것 같다.
예뻐 보이진 않았어도 건강했던 내 머리칼, 뻗치든 부스스 하든 도로 돌아갈 수 있다면
행복하게 커트머리하고 살 텐데
델릴라가 잘라간 머리칼을 도로 붙일 수 없는 삼손처럼
시간이 흘러 빠져 버린 머리칼은 돌아오질 않는다.
지금이라도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지내야겠다, 얄핀 해도 부드러워져 더 곱실거리는 컬에 감사하고
자꾸 잃어버리는 어휘력에 , 그나마 말을 잘해보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노력을 더하게 됐고
헉 하는 말실수도 자꾸 하는 바람에 웬만해서는 주눅 안 들고 , 다시 기억해 내려고 노력한다.
삼손은 기둥을 부서트려서 다 죽여버렸지만 , 난 젊음에 교만했던 나만 없애고 다시 살아가야지
내 머리칼을 잘라간 것은 델릴라일까, 시간일까 , 늙음 일까?
삼손의 머리에서 힘을 가져간 것은 세월 아니었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