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리 김치가 있기까지
비가 꾀 자주 왔었고, 딱히 약속도 없는 금밤
가족들도 다 늦게 오는 걸 확인하고
머리나 잘라볼까? j 스튜디오에 들러본다.
예약을 하고 오란다, 정 오늘 하신다면 30분 뒤에 오라는
하릴없이 미장원서 폰 보고 시간 보내기 싫으니까, 집으로 간다.
그때 눈을 마주치지 말았어야 됐다.
동네 모퉁이에서 늘 야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있는데
오늘은 장사가 안되는지 그분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가
대신 앉아계신다, 그 앞으로 하얗게 잘 다듬어진 알타리 한 단
이 집은 야채 다듬어서 그때그때 찬거리를 다듬어서 판다.
요즘은 열무랑 얼갈이 알타리 철인가 보다.
지지난주 대형 C 마트에서 산 총각김치 2킬로가 삼일 만에
없어진 걸 기억하며 , 알타리네 예쁘다 쳐다보는데
그 집 할머니랑 눈이 딱 마주쳤다.
" 알타리 가져가, 전부 다듬어서 아주 쉬워,
우리 집 몰라 , 동네 장사라 좋은 것 아님 장사 못해"
뭐 , 알타리의 상태나 다듬어진 건 중요하지 않고 , 금 밤 약간 시간이 남는 나는
이 더위에 바깥에서 하루 종일 장사했을 할머니랑 눈이 마주쳐버린 거다.
그것도 젊은 딸도 더운지 약속 있는지 사라진 야채매장, 홀로 지키는 할머니
에이 망하면 뭐 사 먹는 총각김치 쉬어서 버렸다 생각하지
"주세요 알타리 한 단"
"깎아줄게, 이천 원, 가져가"
"네네 주세요"
이만 원 드리고 이 천 원 거슬러 받으려는데, 할머니가 다시
"아 그런데 쪽파 있어? 없으면 다듬어진 거 이천 원어치만 줄까?"
"없는데 , 네 그렇게 주세요"
이만 원에 알타리 다듬어진 거 한단, 쪽파, 할머니 계량대로 적당히
손에 쥐어진 나는 , 한쪽 어깨가 슬슬 무거워지면서 후회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괜히 샀나, 김치 한봉 사 오면 될걸
집에 들어오자마자 선풍기 틀고 전투 시작이다.
앞치마만 두르고 , 베란다 스텐 큰 양푼 꺼내서 알타리 소금 뿌리기 시작한다,
원래는 잘 씻어주고 물기를 말린 뒤 절이지만 , 미용실 예약한 나는 30분 만에
노쇼가 되지 않기 위해 바쁘다. 알타리 충동구매라니, 김치팩 충동구매보다
수습이 더 바쁘다. 이놈의 p적 성향 때문에 마트 다녀오면 , 몇 봉지 계획에 없는
아이템들이 들어있다. 오늘 처음 나온 알바처럼 보이는데 영 장사를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
한 봉지, 열심히 소리치는데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면 한 봉지, 양쪽에서 같은 제품 파는데
한쪽이 영 기죽어 보이면 한 봉지, 대부분 냉동만두, 라면, 두부, 커피 같은 두고 먹을 수 있는 제품들이라
한 개씩 더 사준다, 대형마트 알바 딱 몇 번 해봤었는데 목소리 작은 나에게 자꾸 소리 지르라고 해서,
더 팔라고 해서 아주 고민스러웠던 알바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야무지지 못한 살림 태도이나, 그날 내가 왜 만두나 라면 커피를 샀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으니 ,
살림은 나의 영역이니까, 오롯이 이 피곤한 마트 측은지심을 끌고 올 수 있었다.
오늘은 동네 야채가게에서 그 p적 성향의 대책 없는 측은지심 발동, 머리를 자르는 내내 알타리 생각만 났다.
검색해 보니 내가 소금을 두배로 뿌렸다, 얼른 자르고 들어가서 소금을 씻어야 되는데
한가로운 금밤 왜 일을 만들어서 , 가장 사모님스런 자태로 앉아있을 미용실에서 알타리 소금걱정이라니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서 과량의 소금기로 축축 쳐진 알타리잎들을 씻어내면서 생각한다.
이 쓸데없는 과소비는 누가 한 거지, 충동구매로 허리 나가겠다.
씻고 다듬고 물기 빼고 , 냉동실 구석 박힌 고춧가루 파내고 , 냉장실 박혀있는 새우젓 발굴해 내고
믹서기로 양념을 갈아내려는데 도깨비방망이 앞주둥이가 안 보인다, 지난번 주스하고 어디로 넘어갔나
결국 다지기기능으로 양념들을 다 다지고, 찹쌀풀 끓이기 싫음, 밥을 다져서 대신 쓰면 된다.
짜든지 말든지 양념을 묻힌다. 김치는 양념을 버무리는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제껏 작업이 맛없는 실패작이 되지 않으려면 , 단맛 짠맛 손맛 모든 맛 내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되는 순간이다. 절체절명의 시간
알타리들이 맛없어서 다 죽어가느냐 , 생생하게 잘 익어서 뿌듯이 잘 먹어지느냐 가름하는 타이밍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여기까지 진행한 것에 대해 마라톤 초보자의 10킬로 러닝에
맞먹는 피로감과 자부심이 넘쳐나지만 정리할 일이 까마득하기만 한 이 마음 누가 알랑가 몰라.
맛을 보았다 , 짜고 맛있다.
아 몰라 이 정도면 된 거지, 김치통에 김치들을 담는다.
그러고도 부엌은 부부싸움하고 지난 자리처럼 요란하다
바닥에 떨어진 야채 잎들, 물기, 고춧가루 자국, 팔뚝에도 양념들이 묻어있고
저녁을 먹었는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빨리 치우고 쉬고 싶다.
이 전투의 마무리는 청소, 정리를 하기 시작하니 남편이 들어온다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 "알타리 담궜어 내일이나 익음 먹어 , 그런데 약간 짤 수 있어"
" 그래 , 짜면 안 되는데 나 혈압약 먹는데 "
갑자기 알타리를 하나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 이런 생각을 현실에 옮기면 ,
알타리고 청소 나발이고 , 카오스가 열릴 것이기 때문에 한 번 참는다.
"그래 , 그럼 무우를 더 넣어야 되나 , 맛이나 한번 봐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