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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기 연민은 피해자 서사가 되고

피해자 코스프레라고도 하지.

by 당신들의 학교

교사가 피해자로 등장하는 기사는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이 교권침해라 주장하는 각종 사례, 사건은 물론이고 학교 현장의 실태를 알린다면서 교사가 몹시 힘들게 일하며 심지어 부당한 대우와 모멸적인 근무환경에 처해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바쁘다.


나는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고, 교육 관련 기사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유난을 떤다.



피해사례에서 겪은 교사의 고통이나 고충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유독 교사에 대해서만 이 같은 피해자 서사가 주구장창 계속되는 현상이 유난스럽다는 것이다.



모든 직업에는 고충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살며
욕도 하고, 화도 내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은 '업무스트레스'라고 하지
스스로를 피해자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교사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피해자 서사. 깊게 생각해 보자.





1. 병적인 자기 연민은 피해자 정체성을 갖게 한다.


앞서 교사들을 집단으로 파악했을 때 심각한 자기 연민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말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분명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직업이 많은데 그들은 이렇게까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은 듯 보인다.


예컨대 사회복지 공무원을 보자.


말도 안 되는 업무량과 온갖 잡일, 게다가 '클라스가 다르다는' 진상 민원.



그렇지만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집단적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은 것 같다. 관련 자료를 찾기 어렵고, 기사마저 어쩌다 한번 등장하는 수준.


실제로 교사들과 관련해서 교사의 피해를 부각하는 기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데, 서이초 관련해서 매일 수십 개의 가사가 쏟아지던 그 해에만 해도 6달 연속으로 매달 1명씩 교육행정직이 죽어나갔다. 놀랍게도 관련 기사는 한 두건에 그쳤다.


아마도 '조회수'가 좀 나올만한 기사거리를 쓰고자 하는 언론의 욕망과 교사의 피해를 자꾸 알려서 약자의 위치에서 도덕적 우위를 고수하고 싶은 교사들의 욕망이 잘 맞은 게 아닐까 하는데


문제는 이런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기사들이 교사들에 자기 연민을 넘어 '피해자 정체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교사들끼리의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다른 직업의 상황에는 어둡고, 위로삼아 서로 힘든 점을 이야기하다 보면 피해의 체감이 증가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매일같이 기사에서는 교권침해 사례라며 자극적인 제목으로 교사를 피해자의 위치에 있도록 도왔고. 교권침해를 신고하는 창구를 만들어 홍보하고 교권침해 사례를 모집하거나 설문조사를 하는 교원단체들의 노력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2. 피해자 정체성을 가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옛말에 이런 게 있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




피해자 정체성을 가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보여주는 속담인데, 피해자는 일종의 '도덕적 면허증' 같은 걸 가지게 된다.



무슨 짓을 해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을 권리



교사들은 그것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을 지도한다. 교사의 말과 행동은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며, 교사 또한 영향을 받는 상호작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하게 학생을 가해자. 교사를 피해자로 구분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가?


대부분의 경우는 어떤 정황이 있을 텐데, 교사들의 피해자 정체성은 사건의 책임비율을 따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린다.


교사의 지도 사항에 포함하거나, 교칙으로 처리해도 될만한 비교적 경미한 행위부터 민법, 형법, 성폭력에 대한 특별법 등 이미 존재하는 법령으로 다툴 수 있는 학생과 학부모의 행위를 '교권침해'라고 선언하는 순간.


학생이나 학부모는 신성하여 건드릴 수 없는 무언가를 해한 나쁜 놈이 되고, 피해를 입었다는 교사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되는 교교권침해의 순교자가 되어 절대적인 안정과 신변보호,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가중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피해자 정체성은 피해를 부풀리고, 피해의 원인을 조작하거나 아예 전혀 다른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


방학을 휴가로 사용하는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교사들은 연봉제라서 방학기간 중에는 실질적으로 무급이라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학생의 행동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는 교권침해 사례에서도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 교사의 안정'에 집중할 뿐 학생을 올바르게 지도할 책임이라던가 앞으로의 학생지도 방향이라던가 하는 '교사로서 본분'은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CCTV 업무 등의 업무량이 많지도 않고, 딱 한 두 사람만 잠깐 하면 되는 업무조차 '교사의 업무량'에 카운트하여 '부당하게 잡무에 동원되어 수업연구조차 할 시간이 부족한 불쌍한 교사'라는 신파적인 서사를 만들어 낸다.

세특과 같은 학생과 관련된 당연한 교사의 업무에 대해서도 그 어려움을 과장하여 '도저히 힘들어서 할 수 없을 정도'라는 인식을 심기 위해 열심이다.

사회전반에 퍼진 이른바 mz세대의 높은 퇴직률이 교사들에게는 '교권추락으로 인한 교직의 매력 감소'로 해석되고

높았던 경쟁률이 이제 조금 줄어든 것을 가지고 '아무도 교대를 가지 않는다'며 대책마련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통계적으로 보아서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연가와 병가사용도 '몸살이 나도 무조건 출근해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연가를 쓰지 못해 여행조차 다니지 못하는' 미친 근무환경이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음에 비하면 작은 것이다.




3. 피해자에게는 가해자가 필요하다


피해자 정체성은 가해자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교사들이 가지는 피해자 정체성의 특성상 가해자는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교사를 괴롭혀야 한다.


그동안 교사들은 전방위적으로 가해자를 지목해 왔다.


교권침해 판단을 해주지 않는 법원, 수당이나 교사 정원 문제로 교육부를 대상으로 하기도 했고, 업무경감 등 사안마다 교육청도 자주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최고의 빌런은 역시나



학생과 학부모




그들을 가해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선은 가르치고 지도하고 협조하는 등 당연한 교사의 임무를 할 수 없게 만든다.




4. 자신의 아이를 혐오하는 부모


이것은 마치 자신의 아이를 혐오하는 부모, 개털 알러지가 심한 강아지 미용사, 폐소공포증이 있는 엘리베이터 수리기사 같은 상황이다.



제대로 일이 될 리가 없다



그나마 학생들이 수업 간 이동을 해서 교사 1명이 특정 학생을 보는 시간이 1시간 남짓인 중. 고등학교라면,


학생들을 혐오하거나 무서워하는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학생 지도에 손을 놓거나, 수업을 대충 하거나, 조금 짜증을 내는 수준일 게다 (나는 그것이 교사 권위가 추락하는 이유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4시간 이상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초등학교 교사라면 어떻게 될지.


다행스럽게도 상당히 소수에 속하는 일부(모두들 아는 예로는 명재완이 있다)를 제외하면 일상에서 만나는 교사들은 정상적이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열심히 지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보는 교사들.
교사들의 단체성향은
왜 이런가.




다음 시간엔 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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