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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미 한쪽 다리가 되어버린 종양

멍청한 공교육 시스템

by 당신들의 학교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수능 이후에 학교에서 할 일이 없이 자습 정도만 하며 졸업을 기다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생했는데 좀 쉬게 하자



라는 것이 대부분의 여론인 것도 맞다.


그런데 말이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도 11월 중순이 되기 전에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 달 정도를 비슷한 상태로 붕 떠있는 건 아시는지.


고3들도 수능 이후가 아니라 1학기 기말고사를 끝으로 학교 수업에서 손을 떼는 비율이 상당하다는 사실. 알고 계시는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는 시기마다 공교육은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이것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인데, 나는 공교육 문제의 시작과 끝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시스템 말이다.







우선 이 멍청한 시스템이 가져오는 나쁜 결과들을 알아보자.


3년 간의 학습이 실제로는 3년이 안 되는 시기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학생의 학습부담이 높아진다. (특히 고등학생)

높아지는 학습 부담과 공교육에서의 '교육공백'은 사교육 의존을 높이게 되었다.

사교육 의존과 공교육의 교육 공백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대비(밤늦게까지 가르치는 학원과 자습만 시키는 학교)는 공교육을 '사교육의 보완기관' 내지는 '평가와 입시에 관련한 행정기관' 정도로 보이게 한다


결국에는 교원단체들이 주장하는 '교권추락'이라는, 공교육의 위기를 말해주는 단어로 귀결되는데.


교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더 편한 길(수업과 상담을 통해 학생들은 '진짜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것을 상당 부분 사교육에 맡겨버리는)'을 택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보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동의하시는지.


단지 학사일정이 입시일정과 맞지 않아 생기는 '작은 오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어차피 방학도 있는데 학생들이 한 두 달 자습하는 게 큰 문제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학이건 뭐건
'교육공백'이 문제다.



여러분들이 동의하건 하지 않건, 다음의 문장은 '상식'에 속한다.



학교 공부만으로는 못 따라가요




초, 중, 고등학교 모두에 적용되는 저 문장이 말 그대로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는데, 저것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입시정책만 주야장천 바꾸다 더 나빠진 것이 대한민국의 공교육이다.



아니,
학교 공부가 부족하다면
학교에서 공부를 더 시키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학생과 학부모는 '능력이 되는 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증명되는 높은 학구열도 그렇거니와, 최첨단의 기술 수준을 가진 선진국으로서 학력과 높은 소득의 상관관계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에서처럼 성적을 비관한 학생이 사회문제가 되고, 주입식 교육과 학력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


그 당시는 성적이 낮은 학생은 학교에선 사람 취급도 안 하던 시대였다. 학생의 학습량이 많다던가, 너무 어려운 과정을 배운다던가, 성적 공개 자체가 부끄러울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성과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을 하면서 학력에 따라 차별하고, 학생을 사람 취급도 안 하며 모멸감을 주던 교사들과 그에 편승한 또래의 무시, 폭력이 문제였지 않았을까?




즉, 성적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니라
성적에 따라 차별하던
사회가 문제였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아니, 시대가 변한 지도 한참 되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해 은메달이나 동메달이어도 기뻐하고, 메달을 따지 못해도 올림픽 참가를 축하해 주고 존중할 만큼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성적에 따른 차별이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되, 높은 학구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을 공교육에서 제공하려는 방향이 올바르다 생각하는데,



2010년 한국교육평가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적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항목에서 3.35점으로 '보통이하'로 조사되었다.



뜬금없게도 지난 수십 년간의 대한민국은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시험을 없애고,

석차를 비공개하고,

교육과정을 축소하고

입시정책을 다변화하면서


학생들이 사교육 없이는 대학을 못 간다는 명제를 정설로 만들며, 교사들마저 학부모에게 학원에 등록시키라고 종용하게 만들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대책만 남발하다
공교육은 권위를 잃고
사교육은 전성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공교육은 끔찍하다.


너무 커져서 이제는 몸을 지탱하는 다리가 되어버린 종양처럼, 이 멍청한 시스템은 잘라내기 쉽지 않다.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3부작입니다.

1부. 이미 한쪽 다리가 되어버린 종양
2부. 스윗한 어른들의 샌드박스
3부. 너무 멀리 왔지만 방법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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