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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웰브져니 Dec 16. 2021

<디즈니만이 하는 것> 리뷰

영화 사업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

 오랫만에 예전 직장인 CJ ENM에서 모셨었고 이후 내가 창업 멤버로도 합류했던 와우픽쳐스의 대표님이시자, 현재는 영화투자배급사 마인드마크의 김주성 대표님을 찾아 뵈었다. 대표님께서는 책장에 꽂혀 있던 책 로버트 아이거가 쓴 <디즈니만이 하는 것>이라는 책을 선물해주셨다. 마침 한 번 읽어보고 싶던 책이었는데! 대표님 감사합니다! (마인드마크 화이팅!!)


 저자인 로버트 아이거는 ABC 말단의 사원으로 시작해 41세에 ABC 사장으로 취임하고 96년 ABC가 디즈니에 인수합병된 후, 디즈니 소유 ABC 그룹 회장으로 디즈니 고위경영진에 합류. 2005년부터 2020년 연초까지 15년간 CEO로 역임한 분. 책 중반까지는 사원이 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의 개인사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중반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디즈니 경영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앞부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내가 조직에 있었을 때 이 분같은 멘토가 있었다면? (있었어도 나는 못버텼겠지만;;) 


"나는 나중에,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비로소, 우리가 성취한 많은 것들 중 상당수는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룬의 '완벽 추구'에 동기를 부여받았고, 이후 그것을 나의 신조로 삼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다른 것도 배웠다. '탁월함(exellence)과 공정함(fairness)은 서로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완벽을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과 사람은 제쳐놓고 제품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행태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 열정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그들이 품고 있는 의구심을 일일이 풀어주며,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의 염려에 대응해야 할 필요도 있다. 또 때로는 내가 보스이고 내 지시가 이행되길 원한다는 점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해야 할 필요도 있다. 전자는 '괜찮은' 방법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결국 그 순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린 문제다. 좀 더 민주적인 접근방식으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동시에 사기를 진작시킬 것인가, 아니면 반대의견과 정면충돌하더라도 (기꺼이 독재적인 보스가 되어도 괜찮을 정도로) 내 의견을 충분히 확신하느냐의 문제라는 얘기다"


 본격적으로 디즈니 이야기가 시작되면서는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작금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 부분.


"실로 흥미로운 시기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전통적인 미디어의 종말이 시작된 듯했다. 그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거의 모든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들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면서도 용기를 내기보다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고, 이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 가능성이 전혀없는 기존 모델을 보호하는 데 고집스럽게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천성이 비관적인 나에게의 일침을 주는 부분.


"비관론은 편집증을 낳고, 그것은 다시 방어적인 태도를 불러오며, 그것은 다시 리스크 기피 성향을 유도한다. 반면에 낙관주의는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역학을 발동시킨다...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좋다고 말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신념을 전달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당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최상의 결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느낌 따위를 전달하지 말라는 의미다. 리더인 당신이 설정하는 분위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누구도 비관론자를 따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자존심을 지키되 거기에 과도하게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사람이 나를 훌륭하다고 평가할 때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침범당할 때, 그것도 그렇게 공개적인 방식으로 도전을 받을 때,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 "


일전에 메모해 둔 것이 떠오른는 대목이었다.


바이드너 교수는 '미래는 어차피 좋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만이 그 결과를 처리할 의욕을 낼 수 있다'며 '불행을 피하는 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자진해서 심리적 비용을 치르며 비관주의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어둡게 얘기하는 건 자기방어적 습관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런데, 솔직히 습관이란게 무서운 거고 나는 낙관주의자들을 질투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나에게도 역시 의지가 되는 문장이었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지적하는 사람도 아니다. 영광은 먼지와 땀과 피로 범벅된 채 실제로 경기장안에서 뛰고 있는 자의 몫이다. 


그리고... 영화 사업에 대한 정확한 통찰.


"영화 사업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여타의 전통적인 비즈니스와 그 운영방식이 다르다는 뜻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직감에 따라 끊임없이 승부를 걸어야 하는, 모든 것에 리스크가 따르는 비즈니스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해줄 최고의 팀을 가지고 있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로 추진 중이던 프로젝트가 궤도를 이탈한다. 대본이 제때 안 나올 수도 있고, 감독과 제작진 사이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다. 떄로는 감독과 제작자의 견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며, 갑자기 경쟁작이 나와 예상을 뒤엎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할리우드의 화려함에 빠져들어 사업적 관점을 망각할 수도 있고, 또 그만큼 쉽사리 그에 대한 혐오감으로 사업적 관점을 망각할 수도 있다." 

 

이 책을 선물해주신 대표님께서 일전에, 영화 사업의 어려운 점이 일이 데이터로 회사에 쌓이지 않고, '사람'에 쌓이는 것이라는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영화 일을 하면 할수록 영화 사업이라는 것이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것에 리스크가 있다'라는 것을 알고 하느냐, 모르고 하느냐의 차이가 크다고 느낀다. 이 때, 결국 판단의 기준은 '직감'- 즉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의 내부에 쌓인 데이타베이스-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 사업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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