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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웰브져니 Jun 19. 2020

영화 제작자가 본 영화 <결백>

 영화 <결백>을 보았다. 나는 어떤 기사에 꽂혀, 실화 바탕의 여자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물 영화를 기획했던 적이 있었다. 관련 사건 자료를 열심히 모으고, 사건을 담당했던 여자 변호사님까지 찾아가 실제 인터뷰까지 했었다. 여자 제작자이기 때문에 누명 쓴 여자를 여자 변호사가 변호하는 이야기를 나야말로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남자 제작사와 남자 감독의 영화 <결백>의 기획이 같은 지점이 있어서 마치 ‘도둑맞은 가난’ 마냥 ‘도둑맞은 여성 서사’의 느낌을 약간 가지기도 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소감은, ‘여자’고 ‘남자’ 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그냥 아마추어 영화 제작자일 뿐이었다는 깨달음. <결백>은 영화 제작자로서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제작사 ‘이디오 플랜’은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인권 변호사가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의 재심을 이끌어내는 영화 <재심>을 제작하여 나름의 성공을 거둔 제작사이다. 나는 ‘이디오 플랜’ 대표님을 뵌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재심>을 제작하면서 실화 당사자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진중하시고 제작사의 윤리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시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결백>은 변호사가 사건을 파헤치는 기본 이야기 골격부터, 누명을 쓴 가해자가 된 피해자와의 공감과 교류라는 감성 포인트까지 <재심>의 흥행 포인트를 잘 따라가면서도, 실화 영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한정되는 한계 지점을 영리하게 변주한다. 실화는 모티브만을 차용하고, 지역 사회에서 이권 사업을 가지고 오랫동안 이웃 간 벌어진 음해와 음모를 개연성 있게 서브 스토리로 가져가면서 스릴러 문법을 살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이 (아마도) 창작된 서브 스토리가 메인 스토리와 엮이는 지점이 살짝 작위적이긴 하나, 중간 지점을 채우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고 결말은 메인 스토리의 마무리로 적합한 감성 포인트를 찍어 줌으로써 영화의 전체적인 만족도 향상에 기여를 한다. 전작을 성공시킨 제작자의 노련함이 보이는 지점이었다.

 

 제작자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스릴러 장르로 관객에게 끊임없는 서스펜스를 제공하는 것은 감독의 탤런트에 기대는 지점이 크다. 나는 감독의 재능에 온전히 기대지 못한다면(신인 감독의 경우 이런 리스크를 지기 쉽지 않고, 제작자가 이런 방식의 리스크를 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을 수를 찾아 두는 것이 제작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유사한 전작 영화가 벤치마킹 사례가 되었으리라 본다.


 나는 왜 이와 비슷한 기획의 그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까.

첫째, 나는 <재심>의 접근법과 같이 접근했으나 실화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풀지 못했다. 이건 내 노력의 문제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두 번째로, 그래서 나도 <결백>과 유사하게 원 사건은 모티브만을 가지고 오고 서브 스토리를 풍성하게 짜는 접근법으로 우회하는 전략을 세웠던 것까지는 같았다. 그러나 나는 서브플롯을 만들지 못했고 만들어줄 적합한 감독/작가도 찾지 못했다. 작가, 감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했을까? 그랬던 것도 같고, 또 내가 적극적이기에 돈이 너무 없었기도 했다. 돈이 나오게 했었어야 하나? 그랬던 것도 같은데, 당시엔 별 뾰족한 수도 없었다. 너무 초짜였던 듯.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가해자>라는 제목으로만 남은 내 기획이 여전히 아쉽기는 하다. <결백>이 개봉하게 되면서, 서브플롯뿐 아니라 풀어야 할 숙제는 더 늘어난 데다 코로나 시대를 맞으며 영화화는 더 요원해진 기획인 것 같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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