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도 싫어? 그래도 결혼 강추!
“결혼하니 어때?”
요즘 정말 자주 듣는 질문이다. 결혼 전 3~4개월 동거를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심심할 정도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TV나 영화에서 봤던 신혼의 설렘이나 풋풋함이 이런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결혼을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야 말로 이런 평온한 일상을 원해서였다.
올해 40살이 돼서야 결혼을 하게 된 내가 가장 마음에 쓰였던 건 싱글로 남아 있는 친구 C였다. 축사까지 해줄 만큼 20년 지기인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연애에 쏟았다. 연애를 떠나 소개팅이나 미팅 등의 만남 횟수를 따진다면 아마 500~1000회는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친구가 소위 말하는 일회성 만남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만남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노력을 했을 뿐 실제 연애를 할 때는 진지한 편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면 C는 상실감 혹은 조급함에 괴로울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나는 염려했다. C가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30대 중후반에 들어서서 하는 연애 기간은 이전의 연애보다 짧아진다. 1년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만큼 경험치가 쌓여서 이 정도 만나면 이후에 어떤 식으로 연애를 하다 헤어지게 될지 너무 훤히 보이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는 이유도 있고, 안 맞는 것을 애써 맞추며 만날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만큼 상대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됐든 서글픈 이유다.
다행히 C는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 이제 2개월 차.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제 서로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라고 연예인처럼 말하더니 다시금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겼고 그에 대한 다툼이 좀 있었다고 했다. 소개팅이 아닌 자연스럽게 알고 지내다가 사귀게 된 연애라, C는 조금 더 인내하려고 했지만 상대는 회의적인 반응이라 적잖게 실망한 듯했다. 꾹꾹 참던 감정이 터진 C는 좋아하는 상대와 헤어진다는 것보다 헤어진 이후에 다시금 혼자가 되고, 새로운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다.
나 역시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에 그 마음이 컸기에 C의 심정을 너무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지친 마음이 들어 대충 타협하며 애매한 사람을 만날 바엔 혼자 살아야겠다는 각오까지 했었고, C는 아직 그 각오가 돼 있지 않았다. 그 이유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나이를 먹으면 인생의 허망함이 찾아올 것 같아. 그 마음이 들 때 누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자식을 낳는 것은 그다음 문제고, 그냥 일평생 살면서 그런 사람은 곁에 있는 게 좋지 않을까?”
42~3살쯤에 결혼한 선배 K와 며칠 전 안부 문자를 주고받다 역시나 나의 신혼생활을 물어보는 선배에게 난 같은 답을 했다. 그러자 K는 말했다.
“우리는 내가 문제야. 난 연애하듯 남편이랑 살고 싶어. 그런 이야기하면 남편은 정말 난색을 표하지. 하지만 난 남편에게 늘 설렘을 주고 싶단 말이야”
아이 없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선배는 그런 마음을 느낄 때마다 드라마를 보며 덕질로 대신한다고 했다. 선배에게도 말했지만 나는 연애를 할 때의 설렘이 싫었다. 연애초반에 설렘이라는 감정은 나에겐 두려움의 이면이었다. 언제고 이 관계는 깨질 수 있는 것. 상대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면 실망을 줄 수 있는 것. 그래서 난 연애 초반에 감정이 깊어지더라도 빨리 1년 후의 ‘우리’가 되길 바란 적이 많았다. 서로를 알만큼 알고, 사랑의 감정도 적당한 농도를 유지하는 안정적인 관계. 더 이상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이별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한 번쯤은 실연에 울었었던 사람은 그 인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마음 맞기 어려운 지 알기에 연애의 설렘보다는 관계의 안정감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감정을 소모하는지도.
우연히 인터넷 짤을 보다가 가수 백지영이 한 유튜브에서 결혼의 장점으로 거론한 것을 봤다.
“연애 안 해도 되는 거”
결혼으로 향하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과정에 고됨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도 그 지난하고, 소모적인 것을 하고 싶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에너지가 얼마나 넘쳐나는 것일까?
그런 의미로, 비혼주의가 넘쳐나는 세상에 혼자인 게 싫고, 연애도 이별도 싫었던 나에게 결혼은 굿이다.
등지고 잘 땐 듬직해서 좋고, 마주 보고 잘 땐 다정해서 좋은 남편을 보며 조금씩 나의 편이 돼 줄 사람이 생겼다는 걸 느끼게 해 주니 말이다. 물론 큰 소리 내며 싸울 때는 그 느낌이 덜 하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