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꽤 오랫동안 우울증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공무원인 친구는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고 정말 심각할 때는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우울증의 증상을 간접적으로 접한 경우는 많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우울증이라는 병에 점령당하는 걸 본 건, 그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 친구와 나를 포함해 다른 친구와 셋이 함께 신년 모임을 하기로 한 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친구는 불참을 표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마저도 친구에게는 엄청난 용기였던 것 같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도무지 약속 장소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사유였다. 마침 그 친구의 집 주소를 아는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집으로 급습했다. 친구가 좋아할 만한 낙지볶음과 함께.
텅 빈 눈동자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기분을 살피며 별의별 이야기를 쏟아냈다. 웃긴 얘기, 슬픈 얘기, 화나는 얘기 심지어 야한 얘기까지. 하지만 친구의 표정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웃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그 친구의 집을 나서며 다른 친구와 나는 단단히 충격받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oo이 어떻게 하지? 저대로 두면 큰일 나겠지?”라고 말했다.
우린 내통하며 그 친구와 열심히 카톡을 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근황을 물었다.
어떤 날은 괜찮다고 했고, 어떤 날은 아침부터 막걸리를 사서 집에서 마시고 있다며, 용기 없어 결단 내리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도 했다. 불안했다.
결국 친구는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결정까지 내렸지만 코로나 때문에 입원 치료마저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복직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오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구가 물었다.
“너 테니스 치는 거 어때? 할만해? 나도 배워볼까?”
나는 언젠가 친구가 “심심하다”라는 말에 희망을 걸어본 적이 있다. 심심하다는 건, 그 무료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만들 수 있는, 인지 과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페이크’였다.
실제로 그 친구는 잠시 무료함을 겪다가 다시 어두운 터널로 들어갔으니까. 그런 친구가 갑자기 운동에 관심을 보이니 나는 또다시 희망을 걸게 됐다. 그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의 테니스 아카데미를 열심히 검색해 줬다. 당장 라켓까지 사지 말고, 내가 초보 때 쓰던 걸 빌려줄 테니, 그걸로 일단 써보라고도 권했다.
그러면서 난 비장하게 말했다.
“oo아, 나만 믿고 운동을 종교처럼 해봐. 의식적으로 운동하러 가고, 당장 큰 변화가 없어도 그냥 해. 뭔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해. 그러다 보면 모든 게 정말 괜찮아질 거야”
친구에게 말하고 보니, 운동은 정말 나에게 그렇게 찾아왔다.
8년 가까이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했다. 입맛이 없었다. 열이 나지 않아도 침이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슬픔은 깊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나 보다.
깊게 마음을 준 남자친구의 배신도 열받는데 여기에 살까지 찌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날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의무적으로 끊어놓은 헬스장을 매일 같이 다녔다. 극한으로 러닝머신을 달리며 한편으론 ‘이 고비를 넘기면 그가 돌아올지도 몰라’라고 내심 스스로와 내기를 하면서. 뛰고,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 보니 코끝이 얼얼할 정도로 추운 날에도 헬스장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씻고 난 후 밖에 나와 맞는 겨울 바람이 얼마나 상쾌한지 알게 됐다. 운동의 참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고급 스포츠로만 여겼던 테니스에 입문하게 됐다. 골프만큼 매몰비용이 크다고 하는 운동이지만 언젠가 배우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농구공처럼 탄성이 있는 공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다. 그런 의미로 테니스는 농구보다는 진입장벽이 낮아 보였다.때마침 이미 테니스 레슨을 1~2개월 한 친구와 마음이 맞아 2:1 레슨을 시작했다. 오빠의 영향으로 스포츠를 보는 것뿐 아니라 하는 것에도 친숙했던 나는 조금이라도 먼저 배운 친구보다 실력이 빠르게 향상됐다. 승부욕이 무척 컸던 친구는 단단히 약이 올랐는지 3개월만에 더 이상 레슨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덩달아 나도 레슨을 끊었다. 하지만 미련은 남았다. 언젠가 다시 시작해야겠지.
그리고 몇 달 후, 우연히 테니스 그룹레슨을 듣게 됐고그때 확신했다.
테니스는 내가 평생 할 운동이다.
테니스 실력이 늘지 않아도 그리 조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평생동안 할 운동인데 당장 못한다고 한들 어떤가? 천천히 늘어도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하루 기온이 35도가 웃도는 와중에도 마스크 낀 채로 야외 테니스장을 전전했다. 얼굴에 햇빛 알레르기가 생겼고, 발가락을 다쳤을 땐 당분간 테니스를 못 칠 생각에 아쉬웠다. 테니스에 미쳐있을 때였다.
그렇게 운동의 영역은 점점 확장됐다. 테니스를 잘 치고 싶어 기초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장으로는 부족했다. 주말에 아침 일찍 친구들을 깨워 북한산, 인왕산, 관악산, 아차산, 청계산....서울 근교에 있는 산은 모두 다녔다. 재택근무가 많아지니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더해져 더 열정적으로 운동에 매진했는지도 모른다.
점점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의 슬픔도, 아픔도 옅어졌다. 건강검진 할 때 수치가 좋아지는 것도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난 여전히 테니스와 등산을 즐긴다. 특히 테니스는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일과다. 여기에 러닝까지 추가됐다. 힘들 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한 번 루틴이 깨지면 다시 루틴을 잡는데 어렵다. 그래서 매주 의식적으로나마 교회를 가는 신자들처럼 운동을 하러 간다.
나에게 운동은 종교다. 하다 보면 어느새 내적인 힘도 쌓인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있을 때마다 기도하듯 러닝머신 위를 뛰고, 테니스 스케줄을 더 잡는다. 심란하고 힘들 때일수록 그렇게. 주님만큼이나 더욱 간절하게. 그래서 난 광신도만큼 강하게 운동의 세계로 전도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가 운동을 통해 성취감을 얻어 자존감을 회복하고, 육체적인 건강을 얻어 정신적인 건강까지 회복하길 바란다. 가장 좋은 전도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믿고, 오늘도 열심히 그 친구를 향해 운동인증샷을 sns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