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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Nov 04. 2024

인생은 5개 공으로 하는 저글링이라던데

난 어떤 공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지난 주말,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의 결혼식의 하객으로 갔다. 10월의 결혼식다운 날씨였고, 식장은 이 날씨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야외였다. 입구부터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남편의 오랜 친구(신부)의 결혼식이었고, 나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결혼식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보통의 결혼식과는 조금 달랐다. 식 시작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신부는 아버지의 손도 잡지 않고 이미 홀로 입장했다고 하고, 신랑 쪽은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 주례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양가 어르신, 특히 으레 한복을 입는  양가 어머니들은 점잖지만 꽤 멋스러운 양장복을 입고 계셨다.

“이 친구답다”

남편은 재밌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곧, 주례사 대신 신랑이 해외에서 근무를 하게 된 본인 대신 혼자 결혼 준비를 한 신부와 하객들을 향해 편지를 낭송했다.

조금은 뻔한 감사와 사랑, 존경의 내용은 짤막하게 흘러가고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코카콜라의 대프트 회장이 했던 신년사에서 했다는 유명한 말이 생각납니다. 인생은 5개 공으로 하는 저글링과 같다고 합니다. 그 다섯가지 공은 가족, 건강, 친구, 영혼 그리고 일인데, 그중 일은 고무로 만들어진 공이라 한 번 놓치더라도 언제고 튀어 오르지만 나머지 공들은 유리로 만들어져, 한번 놓치거나 깨트리면 원상복구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요”

이어진 말은 우리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그 말들이었다. (일보다 더 챙겨야 할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잘 살겠다는.... 그런..)

가만히 생각했다.

사실 난 위의 말과는 정반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일은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유리공, 나머지는 언제고 회생할 수 있는 것. 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건강의 소중함은 하루가 다르게 깨닫고 있지만, 솔직히 나머지는 너무나 가까이에 있고 익숙해서,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으니깐.


요즘 사람들이 심심하면 나에게 묻는다.


“신혼 생활은 어떠신지?”


솔직히 나를 완전 게으름뱅이로 만드는, 엉덩이 가벼운 남편 턱에 나는 혼자살 때보다 더 푹 퍼져 지내고 있다. 나중에 하면 더 귀찮아 진다고 생각난김에 빨리 해버리고, 꼼꼼하고 깔끔하며 계획적인 성격의 남편 덕에 허술한 나는 뜻하지 않게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침대 위 혹은 소파 위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니 나의 결혼 생활은 꽤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다툼도 그리 잦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나의 PMS발동으로 그와 냉기가 흐르고 있다)

문제는 나의 회사 생활이다. 내가 이렇게 일에 대한 열정이 컸나 싶은데 생각해보면 그리 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역사를 살펴보면, 사업하는 아버지를 늘 존중하고, 중요도에서 늘 최우선으로 삼았던 엄마의 영향도 있다. 취업해 돈을 버는 순간부터 엄마는 월간지 마감 때문에 가족행사에 참석하지 못해도 늘 허용해 줬다. 일이 우선이라는 부모님의 가치관은 나에게도 꽤 깊숙하게 각인된 것이다. 하필이면 내가 일을 시작한 곳은 내가 아니면 대체할 수 없는 성격의 업무였고(월간지 마감은 그렇다. 기자는 특히나 명예직임이 분명하다. 기사 뒤에 따라오는 이름 석자, 그것만 생각하며 박봉을 감수하는 기자들이 다수다) 나는 모든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돈 버는 일 뒤에 숨곤 했다. 부모님의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내가 어린 시절 주말이면 일하러 나가는 아버지가 어쩌면 이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귀찮고 성가신 집안 일에 신경 쓸 바에는 출근해서 (혹은 출근하는 시늉이라도 해서) 일하는 편이 더 생산적이겠다는 생각. 내가 혹은 아버지가 그러는 동안 집안의 모든 일은 엄마의 몫이 됐다. 집안 일과 자녀를 돌보는 일 등등. 희생적인 현모양처 형인 엄마는 우리와 친하지 않은 아버지를 어색해하거나 조금 무뚝뚝하게 대하면 늘 “너네 아빠처럼 성실한 사람이 어딨니? 아빠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한다~ 00이네 아빠 같은 사람 없다고” 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를 향한 엄마의 존경심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을까? 대답은 노 다.

아버지는 여전히 가족이 함께 있을 때 어색하며, 겉돌고 이제서야 알게 된 건, 그는 이기적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산 사람이다. 단순히 아버지의 사업의 말로가 좋지 않아서거나 지금은 은퇴하고 별일 없이 노년의 백수가 돼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배신했고, 우리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모두 놓쳤다.

아버지가 일하는 동안 혹은 딴짓하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이 컸고, 너무 많이 알게 됐다.


다시금 일에서 주는 만족감이 크지 않아 괴로워하는 나로 돌아가보자.

일을 고무공이 아닌 유리공이라 여기는 나로.

나이를 먹으면 이 고민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나에게 일은 무엇인가?


확실한 건, 일을 유리공으로 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고무공까지는 아니어도, 내성에 강한 물질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내 인생에서 일의 밀도와 함량을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답을 못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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