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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Sep 03. 2023

나를 키우는 고양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조조가 나와 함께 산지 2~3개월이 됐을 무렵이었다.

아직 아가인 조조에게 너무 자극적이었던 건지, 추르를 먹고 토를 하는 건 물론이고 설사까지 연거푸 해댔다. 토하는 것 정도야 고양이들에게는 흔히 있는 증상이지만, 설사는 좀 다른 문제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변의 색깔, 묽기 등에 따라 고양이 건강에 큰 위협이 되는 증상이었다. 서둘러 동네 동물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미리 찍어 놓은 조조의 변 상태를 보고, 최근에 먹은 게 무엇이 있는지, 사료는 무엇을 먹이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추르는 이 아기 고양이에겐 너무 자극적이니, 성묘가 될 때까지는 먹이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이의 표정이 아주 밝은 거 보니, 금방 나을 것 같아요. 애정도 많이 주고 있는 모양이에요”

처음으로 키우는 고양이라 지식과 상식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나를 두고 안심시켜 주려는 말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무척 안도했다. 아니,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주는 사랑이 지나치게 조조에게는 너무나 인간 중심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조조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금세 윤기 나는 손가락만 한 변을 싸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이 타인의 눈에도 보인다는 것은 꽤 기쁜 일이었다.


엄마가 어린시절 내 생활기록부에 적힌 “명랑, 쾌활”혹은 “학우들과 관계 원활”이라는 말을 보면 그런 기분이었을까?


자연스럽게 엄마 생각이 났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친구들을 포함해, 출산을 하고 육아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자라는 동안 더욱 엄마 생각이 난다고 한다. ‘엄마가 이런 맘으로 나를 키웠겠구나’라는.

나는 친구들을 통해, 그리고 친구들의 아이를 통해 엄마를 생각하곤 한다.

조조를 키우면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엄마가 처음이라 겪었을 다양한 시행착오. 어쩌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정보가 없었을 테니 더욱 막연했으리라. 게다가 엄마는 일찍이 친모, 즉 외할머니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대물림받을 수 있는 육아 노하우는 별로 없었을 거라 짐작됐다. 끽해야 가까운 친구나 엄마의 언니들 일 텐데, 우리가 자랄 때는 이모들 역시 육아에 전념하느라 주변을 살펴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다들 살기 바빴을 테니까.

30살이 되기 전까지도 나는 마음 한구석에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왜 그때 그 정도밖에 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때 나에게 그런 옷을 입혔을까… 원망할 것 투성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20대와 30대를 미루어 짐작해 보니, 엄마는 그때 최선을 다해 나와 나의 오빠를 키웠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공부와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다. 공부에는 요령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타고난 부분도 필요하다. 일 역시 운 때가 필요하며, 주변환경이 받쳐줘야 더 성공할 수 있다.

육아는 최선만이 답이다. 물질적인 최선이 아닌, 마음의 최선.

부모가 얼마나 온 마음을 다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그 질문에 나는 우리 부모님은 그러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조를 키우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조조가 자신을 보호해 준 집사를 떠올렸을 때, 자기 일에 바쁘긴 했지만, 매번 그때그때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중간중간 서운한 부분도 있지만 그건 그 최선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그렇게 엄마를 원망하며 보냈던 10,20대가 있었건만, 엄마는 여전히 결혼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은 나를 두고, 늘 이런 말을 한다.

“엄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살면서 가장 잘 한 건, 너네를 낳은 거야”

며칠 전 영화 <더 웨일>을 보며 엄마의 그 말을 떠올렸다.

“알아야겠어.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단 걸!”

이제 3살짜리 고양이를 키우는 나 역시, 감히 하고 싶다.

“조조와 함께 살겠다고 결심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였어”라고.

나 홀로 살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그 마음을, 그 감정을 느끼게 해 준 내 곁에 있는 가장 큰 존재.

나는 조조를 보살피고 있지만, 조조는 나를 성장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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