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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Jul 20. 2022

나 혼자 육묘(育猫)한다

육묘할 결심


조조는 도곡동에 있는 교회에서  발견된 고양이다.

친한 선배의 지인 동네 교회에서 홀로 빽빽 울고 있던 새끼 고양이로, 당시 길냥이가 낯설었던 동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일단 박스에 넣고 아주 소극적으로 돌봤다고 한다.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 몰라 편의점에서 게맛살, 참치캔, 우유 등을 박스 근처에 뒀다고. 도곡동에 사는 선배의 언니는 이 장면을 찍어 선배에게 보냈고, 이미 2마리의 성묘를 키우고 있는 선배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 교회에 가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이제 태어난 지 5주 정도 된 아기 고양이의 상태는 매우 건강하고, 또 청결했다. 선배는 회색 빛깔 고등어 무늬를 가진 고양이의 코가 유난히 핑크색이라 ‘핑코’라는 아명(?)을 지어줬다. 조조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새끼 고양이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가히 움직이는 인형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하지만 그 귀여운 고양이를 선배가 키우는 성묘들까지 귀여워할 리 만무했다.


눈칫밥 먹으며 기가 죽을 법도 한데, 이 작은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컷 성묘들의 간식과 밥을 탐했다. 젖병에 분유를 타 먹어야 하는 아기 고양이가 이토록 대범하고 맹랑하니, 성묘 고양이들의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스트레스 때문에 아침마다 구토하는 고양이들 때문에 선배는 서둘러 입양처를 찾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당연히 인기는 대폭발.
선배는 신중하게 입양처를 고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새끼 고양이의 그 귀여운 시절을 만끽하고자 선배의 집을 찾았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이 성사됐다.

정말 두 성묘의 기를 죽일 만큼 작은 녀석의 움직임은 활발했고, 또 깜찍했다. 그리고 거침없었다.
성묘들이 먹는 간식을 자기도 먹겠다며 방에서 뛰쳐나와 머리까지 흔들며 열심히 먹었다. 길거리 출신의 고양이들은 이렇게 생명력이 강한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 손바닥만 한 이 고양이는 내 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손가락에 닿는 발바닥 핑크 젤리는 말 그대로 쫀득쫀득.
선배는 우스갯소리로 “핑코야~ 엄마 품에서 잘 자네?”라며 바람을 넣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고양이는 자신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열흘 후에 조조는 15평 남짓한 우리 집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조조를 데리고 오기 전에 몇 날 며칠 밤 잠을 설치며 고민했던 것들이 있었다.


하나,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괜찮을까?

강아지만큼 손이 많이 가는 건 아니지만, 고양이는 그보다 훨씬 예민한 동물이라던데…
그리고 아무리 고양이가 혼자 시간을 잘 보낸다고 하더라도, 내가 여행을 길게 가는 건 어려워질 수도 있을 텐데.. 희생 없이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너무 무지해서 몇 번의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잘하고 싶었다.


둘, 덜컥 데리고 왔는데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이 부분은 고양이 키우는 선배 집에 뻔질나게 다녔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잠깐 같이 있는 것과 평생을 사는 건 다르지 않을까 라는 염려는 있었지만 실제로 큰 문제는 없었고, 겪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셋째, 고양이가 죽었을 때의 상실감은 어쩌지?
아직은 먼 얘기겠지만 언제, 어느 순간에 그런 일이 닥칠지도 모를 일이고 이 부분은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지속될 걱정이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언제든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는 존재와 함께 한다는 것일 테다.

 


그리고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했다.


연애하고 싶다면서 남자 만나기 더 힘들겠네?

그때는 아니 왜요?라고 반문했지만 고양이를 키우면서 그 말이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다. 지금 나에게 조조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여행을 가도 1박 2일, 끽해야 2박 3일 정도를 계획한다. 그 이상은 조조가 아니라 내가 불리불안을 느낀다. 그런데 나와 함께하는 이 작은 고양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 연애라고? 난 시작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남자를 만날 때  '고양이를 키우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혹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식의 조건이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것이니, 확실히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도 좁아진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데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싫으니까.

 

털 엄청 날릴 텐데 괜찮겠어?

솔직히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털이 복슬복슬 나지 않은 동물은 귀엽지 않다. 인간인 나도 날마다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청소하느라 바쁜데 그깟 털 때문에 고양이 키우는 게 주저된다면 진짜 안 키우는 게 낫다. 고양이는 털을 뿜어내는 동물이다. 털만큼이나 귀여움을 뿜어내니, 털이 빠지는 자연스러운 상황은 나에게 큰 문제는 아니다. 위생이 걱정이라면 열심히 청소를 하면 된다. 실제로 조조가 집에서 안 가는 공간이 없어 주 1회 하던 청소를 틈나는 대로 하고 있다.

 

돈 모으기 글렀네?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부터 어차피 돈은 못 모았다.ㅎㅎ

실제로 고양이를 키울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다. 고양이 키우면 돈 많이 들지 않냐고. 나도 처음에는 겁이 좀 났다. 정말이지,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게다가 조조는 암컷이라 중성화하는데 수컷보다 수술비용이 더 많이 든다.(약 2배) 사실 새끼 고양이가 1살이 되기 전까지 각종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 잔병치레를 하느라 돈이 꽤 많이 든다. 그리고 꼬박꼬박 사료와 모래를 사야 한다. 틈틈이 고양이 장난감, 간식 등을 사느라 등골이 휜다. 해주고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거실에는 조조의 숨숨집, 터널, 캣타워 등으로 꽉 차 있다. 애 키우는 집이 그러하듯, 집안 곳곳에는 고양이의 장난감이 뒹굴고, 청소해도 금세 더러워진다. 하지만 내가 조금 부지런하면 해결될 문제다. 그리고 조조가 혹시 갑자기 아플지도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아주 소액이나마 적금을 붓고 있다. (매달 5만 원씩) 한 살이 지나고 나면 고양이는 웬만해서는 잘 아프지 않다. 그러니 고정적으로 나가는 건 사료, 모래, 간식 비용 정도다.

어차피 돈은 못 모으지만, 고양이가 삶의 동력이 되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돈을 버는 데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처음 조조를 홀로 두고 출근한 날,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펫 cctv로 열심히 녀석을 관찰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자느라 시간을 보냈다. 이 녀석이 언제쯤 나를 자기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의지하게 될까...또 언제 커서 중성화를 할까.. 언제 커서 꾹꾹이나 그르릉 소리를 내며 나의 애정에 답할까.. 라는 마음이 무색하게 고양이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자랐다.

고양이가 내 살갗에 닿는게 아무렇지 않게 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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