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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Oct 10. 2023

부모와 화해하는 법

딱히 불화가 없음에도 난 오늘도 그들에게 화해를 청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본가가 있는 수원에 간다.

독립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꼬박꼬박 1박 2일 이상은 머물다 돌아왔는데

요즘은 홀로 있는 고양이와 잠자리를 핑계로 당일치기로 다녀온다.

서울에서 수원은 그리 멀지 않은데도 마음먹고 가야 하는 곳이 됐다.

한 달에 한번 그것도 하루 당일치기로 부모님을 만나고 온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와 소원해진,

혼기 꽉 찬 딸이라고 여긴다.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 소원해진 거리감이 꼭 우리 관계를 나쁘게 만들진 않는다.

되레 긍정적인 요소가 됐다.

멀찍이 나는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됐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을 스스로 하며 어린 시절 나를 대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해도 하고, 원망도 되고,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온갖 감정에 휩쓸리게 되는데 대부분은 엄마, 아빠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나의 아빠가 그랬듯 나와 내 고양이를 위해 돈을 번다. 불투명한 나의 미래를 위해 일을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혼자 살아도 괜찮은 수준의 밥벌이는 해야 한다며,

성실하게 매일매일 출근한다.

친구 B는 아직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된 지, 내내 가정주부로서 역할만 한 엄마는 모른다며 푸념한다. B의 말론 회사에서 힘든 얘기를 토로하면 엄마는 늘 어쩌겠냐는 듯이

“세상에 안 힘든 게 어딨 니, 남의 돈 벌어먹기가 어디 쉬운 줄 아니?“라는 말뿐이라고 한다.

B는 어렸을 땐 몰랐는데 엄마는 한창 일했던 시절의 아빠에게도 같은 말을 했을 거라며,

그 시절의 아빠가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지금까지도 나를 붙들고, 아빠는 무조건 바깥일에 열중해야 하니 가사는 모두 도맡았던 걸 후회한다고 말한다. B의 아버지와 달리 우리 아빠는 바깥일을 좀처럼 엄마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공유’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사실 아빠의 입으로 전해졌어야 할 가정경제에 관한 정보가 엄마에게는 완전 차단됐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던 아빠가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했던 엄마는 IMF의 혹독한 맛을 대책 없이 직면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무렵, 엄마는 갑작스럽게 아빠의 사업을 도와야 했다. 가정주부였던 엄마가 뜬금없이 가구 판매직을 해야 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일찍이 철이 들어 어떻게든 학교에서 인정받아 부모의 속을 썩히지 않아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맞춰 내 몸에 맞지도 않는 큰 교복을 물려 받아도 "괜찮다"라는 말을 했다. 그게 먼훗날 내가 학창시절에 찍은 사진을 볼 때 두고두고 얘기할 거리가 될 지도 모르고.  지금의 엄마는 너무 빨리 성숙해져 버린 나와 오빠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며, 바깥 일하는 남자로서 아빠를 너무 믿었던 것을 못내 후회한다. 아빠는 바깥 일하는 가장이라는 미명하에 가사 일이라고 는 전혀 할 줄 모르는(라면 마저 끓일 수 없는) 사람이 됐고, 아빠를 그렇게 만든 건 모두 엄마 당신 잘못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가 사귀는 남자친구에 대해 물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한다.

“변치 않고 잘해줘?”

연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 같은 남자가 결혼 후에 어떻게 변하는지 실제로 겪은

한 여인의 진하고도 쓰디 쓴 질문이다.

그리곤 요즘에는 남자친구에게 절대 요리를 해주지 말라고 한다.

내가 독립한 지 5년이 훌쩍 넘었건만 엄마는 내가 요리라곤 ‘1’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차피 할 줄 모르는 거 괜스레 잘하는 척 거만 떨지 말고 그냥 남자친구에게는 아무것도 할 줄 모로는 여자로 포지셔닝하라고 조언한다.


“요리가 얼마나 힘든데, 더운 불 앞에서.. 어이구.. 넌 절대 요리하지 마. 집안일이라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걸로 해. 넌 대접받으면서 살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 나는 어찌 이렇게 독립해서 멀쩡하게 살고, 밥벌이를 할 수 있겠나.

어불성설인걸 알면서도 엄마는 당신과 같은 삶을 내가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말한다.

그러면 난 건성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난 일찍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을 했다.

내 눈에도 우리 가족 내에서 엄마의 희생은 가혹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바깥일도 했고, 집안일도 했다.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은 일을 했다. 청소, 빨래, 요리… 사실 그 어느 것도 덜어주지 못한 자식이라 엄마에게 할 말은 없지만 난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으론 아빠를 너무 의지만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말이지 아빠에게만큼은 가사 일 빼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여인이고 싶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것은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요리만큼은 엄마처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만든 음식을 상대가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를 느끼며.

아마 엄마는 지금도 그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기쁨보다, 그런 고생을 하지 않으며 사는 딸을 보는 게 더 크다 여기기에 나의 요리를 막는 것이겠지.


나는 나의 부모와 이렇게 화해하는 중이다.

엄마의 역할과 아빠의 역할을 모두 해보면서 그들이 느꼈을 희로애락을 느낀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 둘 씩 인정한다. 그때 두 사람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다. 대부분의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나의 엄마로서, 나의 아빠로서 두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아직 부모가 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건 아직..이다)

 

그것마저 모두 이해되고, 인정되는 순간이 오면 그땐 아마도 비로소 완전히 그들과 화해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부모와 화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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