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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Jun 13. 2023

기특한 놈


‘훗, 왜 이렇게 촌스럽지? 선진국이라더니? 여기가 캐나다 맞나?’

이것이 캐나다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느낀 내 첫인상이다.

나도 옷이나 패션에는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보는 눈도 없는 생 무식이라서

‘혹시 이게 새로운 트렌드?  아니면 문화차이?’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유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국 사람들이 훨씬 더 세련되고 멋있게 입고 다닌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태리나 프랑스에서는 그들이 한국과는 다른 나름의 멋을 부리는 게 촌놈인 내 눈에도 확실히 보였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옷가게 쇼윈도에 진열된 것을 봐도 거의 10년 전 한국의 시장 아줌마 패션에 가깝다.

좋게 말하면 캐나다 사람들이 좀처럼 사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옷도 그냥 편안하고 따뜻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굳이 비싼 옷에 집착하지 않으며 번쩍이는 장신구를 착용하거나 명품 가방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며 과시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고 음식이나 휴가생활도 실용적이고 소박한 편이다. 이것은 미국도 조금 비슷한데 캐나다는 춥고 척박한 환경을 버텨낸 전통 때문인지 이 극단적이게 소박한 실용주의가 미국보다도 더 심한 편이다. 차는 좀 큰 승용트럭이나 SUV를 선호하지만 페라리류의 엄청 비싼 차는 거의 안 보인다. 한편 집에는 신경을 많이 쓰고 좋은 집도 꽤 많지만 그것도 실용적인 크기와 모양을 추구하는 정도이지 미국 비버리힐스처럼 지나치게 과시적인 큰 집을 보면 사람들이 오히려 눈살을 찌푸린다

그런데 ‘과시’는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인류가 수렵채집을 끝내고 정착을 하여 저장가능한 자산이란 것이 생겨난 이후에는 세계의 어느 문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본능인데 여기 사람들이라고 자랑을 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만 살겠는가?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뭐가 있는지 살펴봤더니 바로 정원이 눈이 띄었다.

별로 노골적이지도 않으면서 은근하게 자신의 삶의 여유와 미적 감각과 재력과 교양을 간접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취미생활에도 좋고 이웃사람들에게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정원! 과연 기가 막히게 캐나다인 다운 과시수단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이웃집 정원들을 다시 보니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정원들에 정말 집주인의 얼굴이라고 할 만큼 개성 있고 멋스러운 정성이 담겨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우리 집 정원을 돌아보니 좀 창피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버려 두었던 우리 집 작은 뒷마당에는 그냥 파란 잔디만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그래서 올봄에는 나도 정원을 좀 가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무모한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열심히 땅을 일구고 거름을 붓고 홈디포에 가서 화초를 사다가 심었지만 우리 집 정원에 핀 꽃은 달랑 2 송이뿐이었다.

차라리 시작하지나 말 것을! 그랬다면 ‘저 놈은 정원에 관심이 없는 놈이로군’이라고 무시를 당하고 말 일이었는데 이제는 ‘고작 저것도 정원이라고 가꾸었나? 모자란 놈!‘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갈아엎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엄청난 시간과 정성과 투자와 세월과 노하우가 담긴 이웃집 ‘넘사벽’을 따라잡거나 흉내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내 정원은 나의 잘못으로 인해 무력하게 비교만 당하는 처량한 전쟁 포로가 되어 매일같이 옆집 정원의 찬란한 개선행렬을 장식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이 비참한 패전국에도 낭보가 하나 날아들었으니

별로 기대를 하지도 않고 꽂아두었던 빈약한 딸기 모종에 탐스러운 딸기가 주렁주렁 예쁘게 매달린 것이다.

아구구 기특한 것!

그래 그래! 못나도 내 새끼야!

부러워하지 말고 기죽지 말고 우리는 우리대로 그렇게 행복하게 살자꾸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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