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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y 14. 2023

스포츠는 살아있다

매사에 천하태평 느릿느릿 인 캐나다 사람이지만 한 가지 진심으로 열심인 것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스포츠! 그중에서도 아이스하키는 한국에서 프로 축구 프로 야구 프로 농구를 다 합쳐놓은 것만큼 인기가 있는 국민 스포츠다. 어쩌다가 지역 팀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거리와 펍과 바에는 지역 팀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넘치고 도로의 교통상황이 달라진다. 그리고 어쩌다가 그 경기를 못 보는 불상사라도 생기면 다음 날 사람들과의 아침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그래서 밤늦게라도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뒤져서 최소한 하이라이트라도 보고 마치 전 경기를 손에 땀을 쥐면서 본 척

'아휴! 3 쿼터 때 역전 당했을 때 얼마나 짜증 나던지.... 그거 실수한 James 다음 시즌 때 트레이드 해야 해!"라고 너스레를 떨어야 한다.

그리고 옷도 조심스럽게 입어야 한다. 나는 초기에 잘 모르고 상대 팀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다가 된통 혼이 난 적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짜고짜

"너 몬트리올 팀 응원하냐? 거기 출신이냐? 한국 출신이면서 왜 그 옷을 입었냐?" 며 뭐 북한 간첩이라도 발견한 남한 정보부원처럼 몰아붙이길래 나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진지한 표정과 주변 사람들의 동조를 보고 그것이 농담이 아니며 쉽게 사라질 적대감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저질러진 일을!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헐크가 된 것처럼 마구 포효를 하면서 상대 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벗어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를 할 만큼 그렇게 내가 뻔뻔하지는 않아서 그냥 죄 없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 한국에서 그 느낌을 체험하시려거든 KTX를 타고 부산 사직구장에 가서 ‘부산 갈매기‘가 울려 퍼지는 롯데 응원석 한 가운데서 비닐봉지 모자는 쓰지 않은 채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가만히 5분만 입다물고 앉아계시면 된다.

사실 나는 옷 입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냥 우리 아이들이 입다가 싫증이 나서 처박아 둔 옷을 주워서 잘 입는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이 물이 거꾸로 흐르고 패륜 역도가 사는 콩가루 집안이라 해도 나는 멀쩡한 옷을 버릴 만큼 현대화되지 못한 구닥다리다. 하지만 나는 유학의 본산 성균관의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입고 있는 옷의 로고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여기 사람들로부터 곤욕을 치르는 벌을 자주 받는다. 한 번은 무심코 텍사스 주립대 로고가 있는 티셔츠를 입고 나갔다가 어떤 사람이 갑자기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서 다가왔고 여기 사람들이 잘 안 하는 개인 신상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너 텍사스 대학 나왔냐? 반갑다. 나도 거기 나왔는데 무슨 과 몇 학번이냐?"라고 물어보는 데

"아니요. 그냥 입은 건데요!"라고 답을 했다가 완전히 학력 위조 경력 날조 사기꾼이 된 듯 경멸스러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나마 너덜너덜한 Seattle 야구팀 모자를 쓰고 나갔을 때에는 추신수가 나를 살렸다.

"오! 너 Marines 팬이냐? 누구 좋아해?"라고 하길래

"응 추신수, 한국 출신이야."라고 말하고 빠져나가려고 했더니

"그 선수 타율이 얼마냐? 이번 시즌 방어율은 좋아졌느냐? 부상당한 것은 다 나았느냐."라고 후속타를 계속 날리는 바람에 역시 KO 패를 당하고 또 죄 아닌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

요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인데 커피숍에서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너 유나이티드 팬이냐? 박지성 나도 알아. 너 한국 출신이야? 아니면 중국?"

이라고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옷이 유나이티드 공식 재킷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옷의 원 주인이 짝퉁이라고는 했지만... 아...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오리지널인데 이 놈이 돈 많이 썼다고 혼날까 봐 짝퉁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확인을 좀 해봐야겠다.

아무튼 여기 사람들의 스포츠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일이나 공부에는 대충대충이어도 스포츠에는 정말 열심이다. 학교 공부는 고등학교도 보통 4시면 끝나고 은행에 가면 줄을 서서 최소 10분은 기다려야 하고 처음에 인터넷 신청하고 연결되기까지 열흘을 기다리는데 정말 속이 터져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열광하고 아낌없이 돈을 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 운동선수가 되면 국민적 영웅이 되어 인기를 누리고 돌아가시면 일대기가 7시 뉴스에 나오고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다.

캐나다 사람들이 애용하는 커피점 Tim Hortons도 하키 영웅의 이름을 따온거다. 아래 팀홀튼 매장 사진을 보라 그의 사진이 벽에 자랑스럽게 걸려있고 테이블 무늬가 하키 경기장이다


이렇게 스포츠가 생활에 뿌리깊게 자리를 잡다보니  이건 흔한 동네 아이스 링크이고

동네 수영장

이건 동네 테니스장이다. 예약없이 아무나 칠 수 있다. 환상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우리가 어릴 때 꿈에 그리던 그 잔디구장

한국에서는 국가대표도 상비군만 밟을 수 있다는 천연 잔디 축구장인데

허걱!

이게 하도 많아서 하나는 동네 조기축구팀이 친선경기 중이고 다른 하나는 텅 텅 비어있다.

하나만 떼어다가 고향 동네에 기증하고 싶다.

그리고 아래 요 사진은 ringjet라고 한국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여자 하키 비슷한 운동을 하는 선수들하고 함께 찍은 사진인데 원정 경기를 간다고 대형 리무진 버스 대절해서 눈보라를 헤치며 9시간을 달려간 후 호텔 예약해서 사흘을 묵고 5 경기 치르고 또 산을 넘고 강을 건너 9시간 달려서 돌아왔다. 다행히 리그 3등을 해서 메달도 받고 분위기는 좋았지만 그 엄청난 경비를 생각하면 어휴 후덜덜 내가 그들의 부모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이걸로 나중에 대학을 가거나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쿨하게 아마추어 취미란다.

더 할 말이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지만 나는 영원히 완전한 로마 시민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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