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이윤수
내가 절망에 묻혀
늦서리에 하얀 사과꽃이 뭉텅뭉텅 떨어져 버리는 이유를 알지 못할 때에도
당신은 상큼한 복사꽃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주었지요
내가 아직 독선에 미쳐
굶주린 멧돼지떼가 고구마 밭을 짓밟아 버린 밤에도
그대는 푸른 새벽 햇살 아래 남은 이삭을 찬찬히 거두었지요
내가 사랑하면 할수록 헤어짐이 슬퍼
해맑은 강아지의 눈망울을 차마 놓지 못할 때에도
당신은 내 뺨을 미소로 어루만져 주었고요
예쁘고 좋아서 행복했지만
마침내 밉고 괴로워도 사랑할 수 있음을
한 고개 고비 너머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 신비한 세계로 당신은 나를 이끌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