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바람 10화

Still

by 이윤수

그럼에도

이윤수

내가 절망에 묻혀

늦서리에 하얀 사과꽃이 뭉텅뭉텅 떨어져 버리는 이유를 알지 못할 때에도

당신은 상큼한 복사꽃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내주었지요


내가 아직 독선에 미쳐

굶주린 멧돼지떼가 고구마 밭을 짓밟아 버린 밤에도

그대는 푸른 새벽 햇살 아래 남은 이삭을 찬찬히 거두었지요


내가 사랑하면 할수록 헤어짐이 슬퍼

해맑은 강아지의 눈망울을 차마 놓지 못할 때에도

당신은 내 뺨을 미소로 어루만져 주었고요


예쁘고 좋아서 행복했지만

마침내 밉고 괴로워도 사랑할 수 있음을

한 고개 고비 너머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 신비한 세계로 당신은 나를 이끌었지요

keyword
이전 09화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