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린 섀프턴의 『그 여자 예뻤어?』에 영감을 받아 쓴 팩션입니다.
북유럽 신화에는 펜리르라는 커다란 늑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짐승은 라그나뢰크- 이 세계의 궁극적인 종말- 때까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고 한다.
그때 늑대 펜리르를 묶어놓은 쇠사슬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바로 "아무도 모른다"이다.
그렇다면 나를 묶어놓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늑대 펜리르를 묶어놓았던 그 쇠사슬은 과연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고양이가 땅 위를 걸어갈 때 나는 발자국 소리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자의 턱수염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절벽의 뿌리로,
공의 치모로, 물고기들의 숨결로,
새들의 침으로 만들어졌다.
나 역시 그와 똑같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
우울한 상상들로 만든 쇠사슬에.
무서운 꿈들로 만든, 걱정들로 만든, 두려운 예감들로 만든,
설명할 수 없는 불안들로 만든 쇠사슬에 묶여 있다.
그 쇠사슬은 매우 유연하고, 비단처럼 부드러우며, 아주 세게 당기면 늘어나기도 하지만,
결코 끊어버릴 수는 없다.
-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제1부 중에서
E는 탈수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독주를 마시고 수분을 빼는 방식이었다.
E의 친구 M은 한 때 '탈수 다이어트'에 동참했으나, 동네의 대형 헬스장에서 꾸준히 PT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기로 했다.
M의 트레이너 선생님은 FC로 직무를 변경했다.
그녀와 같이 근무하는 FC는 어느 회원 B와 상담 도중 "쌤 한테 PT 받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B는 인사를 받기 위해 누군가를 따라다니며 뚫어지게 쳐다 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며, 탈의실에서 벌거벗은 트레이너 Y의 중심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Y는 새로 등록한 회원 S에게 "회원님 현재 가능하신 금액이 얼마인데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갖고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으나, 결국 영업에 실패했다.
S는 사옥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계열사 헬스장에서 퇴근 후 운동을 하는 호사를 누리곤 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기로 밝혀졌고, 대표 O는 검찰에 송치됐다. 사옥은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O는 이른바 '멸치'로 통했다.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를 하고 세트마다 회원복의 소매를 걷어 올리며 포징을 취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어느 날에는 트레이너 J로부터 포징은 당분간 멈출 것을 권유받았다.
J는 뼈로 운동하고 있는 회원들을 근육으로 운동하게끔 바로 잡아주는 능동적인 트레이너였다. 덤벨존에서 이상한 운동을 하고 있던 회원 C에게 다가가 차근차근 바른 스쿼트 자세를 알려주었다.
C는 운동 신경과 수행능력이 제로였다. 트레이너 K에게 매회차 잔소리를 듣곤 했다.
결국 "내가 여기서도 혼나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다. 얼마 뒤 헬스장을 옮겼다.
K는 어느 유명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그는 코로나 이후 줄곧 트레이너가 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K의 학교 후배 T는 보디빌더이자 인기 있는 헬스 유투버다. 그는 내추럴로 활동하지만 라이프타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T의 전 여자친구 P는 잘 알려진 인플루언서다. 그녀는 연애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그녀의 현 남자친구 H는 마른 몸에 적당히 예쁜, 여자들이 좋아하는 패션 근육을 가졌다. 그는 러닝과 크로스핏을 즐겨한다.
H의 크로스핏 박스의 헤드 코치 L은 가장 열정적이고 남성적인 에너지를 가진 클로짓 게이였다. 그는 매주 토요일 밤이면 만남 어플을 켰다. 자신의 직업을 숨긴 채 근처에 있는 남자를 찾았다.
L과 매칭된 U는 강남 한복판 대형 헬스장의 트레이너였다. 100kg이 넘는 거구에, 짙은 구릿빛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주로 자신보다 힘이 센 남자를 찾는 바텀으로 활동했다. U는 자신의 담당 회원 Q에게 '삼스'를 권하기도 했다.
Q는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한 달 전 여자친구 P와 이별했다. 이별의 충격을 잊기 위해 무작정 헬스장에 등록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하루 두 번씩 운동을 했고, 식단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볼륨감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포징룸을 뜨지 못했다.
P는 ‘핑크덤벨리프터(Pink Dumbbell Lifter)’라는 브런치 에세이를 쓰고 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