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막 시작 되는 토요일이었다. 친구 M과 소원을 빌러 관악산에 가기로 했던 계획은 현관문 앞에서 멈춰 섰다. 신발을 신기 전, 휴대폰 화면으로 미세먼지 수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우리는 망설였고, 결국 산 대신 쇠 냄새를 택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미 써버린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대신 묵직한 짐백을 어깨에 메고 오랜만에 1호선에 올랐다. 그 익숙하고도 낯선 밀도감에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았지만, 에어팟을 타고 흐르는 음악에 의지하며 무심해지려 애썼다.
M의 동네에서 보낸 원정의 시간. 예전에 와 본 적 있는 곳이었지만 하체 운동은 처음이었다. 이곳의 일일권은 비쌌지만 M의 협찬으로 오랜만에 동스장의 중국산 머신대신 싸이벡스와 해머를 당길 수 있었다. 나는 복에 겨워 한 껏 고양되었다. M의 루틴을 따라 생소한 카프레이즈 머신을 했다. 발에 쥐가 올라왔지만 하체운동의 메인급인 인아웃타이를 반복했다. 기분 좋은 단조로움이었다. 하지만 이름 모를 외산 핵스쿼트 머신은 지나치게 무거워 결국 원판 하나 끼워보지 못하고 포기했다. 고통의 예감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명확하다. 유산소를 하러 간 M을 뒤로 하고 힙쓰러스트를 빼놓지 않는다. 이윽고 홀로 덤벨 존에서 파운드 단위의 무게를 감으로 들어 올리며 스티프 데드리프트를 했다. 또다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것조차 나의 자양분, 에너지라 생각하며 엉덩이를 더 깊게 뒤로 뺐다. 계단을 타자 앞뒤로 따라붙은 누군가도 있었다. 물론 나의 착갈일테지. 운동 후엔 은애로운 M이 제공한 제철 과메기에 알코올을 쏟아부었다. 몸 안의 수분을 덜어내고 단백질과 지방을 채우는 기묘한 탈수 다이어트가 이어졌다. 술기운에 새벽까지 떠들다 잠 못 들고 나는 틴더 속 낯선 남자들의 몸을 구경하다가 꿈도 없이 깊게 잠들었다. 오랜만에 참되고 보람 있는 명절의 시작이었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두 곳의 헬스장을 배회했다.
다시 돌아온 나의 옛날 옛적 단골 대형 체육관. 연휴 내내 열려 있는 그곳은 안전한 도피처 같았다. 익숙한 바코드를 찍고, 늘 쓰던 락커에 가방을 던져 넣는다. 아침나절인데도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명절 특유의 니글거리는 속을 태워버리려는 이들의 결심인지 비장함인지 모를 것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케이블 머신을 크로스오버로 독점한 사람 때문에 루틴 계획이 조금 틀어졌지만, 나는 묵묵히 어시스트 풀업으로 선회했다. 매번 전완이 털려 나가는 감각을 즐기며. 렛풀다운 자리에 앉아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그 자리에 앉아 염탐했던 그가 잘 살고 있을까. 잘 산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층으로 올라가 해머 로우 머신들을 기다림 없이 순서대로 만끽했다. 다시 덤벨존으로 내려가니 옆에서 브라탑을 입은 영포티 언니들이 망가진 자세로 요란하게 크로스핏처럼 빠르게 스쿼트를 하고, 남자들이 그들을 대놓고 구경하는 시끄러운 광경 속에서도 나는 나의 하부광배에 집중하며 덤벨로우의 궤적을 지키려 노력했다. 러닝으로 마무리할 때는 힘들다는 느낌보다 왠지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질 만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명절 당일의 하체 운동은 조금 더 짜릿했다. 다만 늦게 일어난 탓에 사람은 어제 보다 조금 더 많았다. 첫 운동으로 인어타이를 제대로 해보고, M에게 배운 팁을 적용해 본다. 그리고 힙운동 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루트머신에 이미 누가 있었다. 힙쓰러스트를 먼저 하고, 괜히 언제 끝나요? 눈치를 보내며 세트를 마친다. 글루트 머신에 엉망인 자세로 앉아 있던 그 여자와 교대하던 순간, 우리는 마치 슬램덩크의 하이파이브 장면처럼 무언의 약속을 나누며 자리를 바꿨다. 그녀가 비켜준 자리에서 나는 진짜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기분으로 엉덩이 근육을 찢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세였다. 이미 오버페이스로 나는 지쳤지만 지난번 무거운 외산머신을 들어 올렸던 그 자신감으로 한 장을 핵스쿼트로 꽂아버린다. 어깨는 으스러지고 허벅지는 불타갔지만 쓸모 있는 기세였다. 다시 에너지를 얻고 덤벨존으로 향할 수 있었으니까.
3층 프리웨이트 존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 숨어 들어간 덤벨 존 구석에서도 그놈의 시선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나는 그 시선들을 기꺼이 받아내며 스티프데드를 꾸역꾸역 소화해 낸다. 볼 테면 보라지. 내 옆에 또 다른 브라탑 언니가 등장해 나 좀 봐주세요라며 정체 모를 운동을 한다. 그러나 이 시선들은 모두 내 차지라며 와이드 스쿼트로 내 마지막 필살기를 시전하고 나는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허벅지가 타들어 가고 붓기가 가득한 채로 계단 머신에 올라 깊게 생각했다.
오늘도 남은 명절 음식으로 배를 채우겠지만, 조금은 부었겠지만, 명절이라고 특별할 것은 내게 더 이상 없다. 세상이 멈춘 듯 보여도 다들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술도 마시고, 이빨을 까고, 이성을 찾고, 운동을 한다. 특히 움직이고 운동을 하는 것은 이제 내게 당연한 내일과도 같으니까. 내일은 당연히 밝아 올 것이고, 연휴는 당연히 끝날테니, 그냥 내일도 연휴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 약을 먹고, 운동하고, 일을 하고, 약을 먹고, 잠을 자면 된다. 정말 별다를 것 없고,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헬스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내일은 어깨+가슴 루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