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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drink Jun 26. 2021

그들의 인생을 그리다.

20살의 정태

     강원도  철원 산골 하늘이 회색빛 으로 찌푸린 채, 눈을 토해내고 있다.  하얀 가루들이  펄펄 가볍게 날리는 듯 하지만, 땅에 내려와 쌓이고 말면 여간 치우기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밀려드는 세월의 무게를 닮은 듯, 어찌할수 없는 눈발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캄캄한 새벽이지만,  정태는 옷을 입고 나섰다.  건물 밖에 세워져 있는 싸리비를 하나 들고,  오늘 하루 종일 올 것 같은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눈을 치우는 건지, 내 속의 답답함을 치우는  건지 알수 없었으나 그저 열심을 내어 눈을 쓸기 시작했다. 땀이 이내 송글송글거려 모자를 벗고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면서 허리를 펴니, 시골집 생각이 절로 났다.


‘시골집에도 눈이 오려나.. 치워드리면 좋으련만..’


     어렸을 적 시골집 논밭에 눈이 내리면,  키우던 마록이와 함께 마당을 마구마구 뛰어다녔다.  아버지는  옷이 젖어 감기 걸릴거라며 혀를 끌끌 차셨지만, 어머니는 늘 그렇듯이 씽긋 웃기만 하셨다.  정태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어졌고 이내, 이번 구정에는 꼭 가서 뵈어야겠단 마음이 간절해졌다.


     정태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그리고 6 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나, 그다지 특출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긋나지도 않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해서 힘든 삶을 이어나갔지만, 옛날 어른들과는 다르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부모님 덕분에, 정태는 행복했다. 그러나, 대학을 갈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점차 감지하면서부터는 집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다. 동생들을 위해서 내 한 입을 덜어야겠다 결심한 그 즈음, 친구 한녀석이 말했다.


‘ 금산 어디께 광산에 가서 일하자. 돈 꽤 두둑히 준다네. 너나 나나 집에서 입 덜어야되지 않겠냐?’


     농사 지으며 그럭저럭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맏이로써,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썩 부유하진 못해도 평화로이 사는 것이 맞다고 맘 먹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빤하게 그려지는 자신의 인생이 답답하게만 느껴졌고, 새로운 곳에서 ‘정태’ 라는 사람이 어떤 다른 인생을 살게 될런지 궁금해졌다. 친구의 가벼운 말이었지만, 정태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볼 기회였던 것이다.


     짐을 싸서 집을 떠난것은 그로부터 며칠 되지 않았을때였다. 떠나는 맏이를 바라보며 애잔한 마음을 다스릴 길 없어, 어머니의 두 뺨에 소리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내렸다. 다치지만 말라는 아버지의 걱정스런 어두운 낯빛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떼었다. 매미가 한참 울어대는 한여름 이었다. 동네 어귀에 나와 땡볕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데도 하나도 덥지 않았다. 가벼운 차림새 덕분인지 약간의 설렘과, 이제부터는 나의 인생이 나의 결정과 판단에 달려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의 중간 어디쯤에 생각이 몰려 마음이 복잡했다. 눈썰미 좋은 버스기사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정태는 하염없이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실어져갔을 것이다.  


정태 나이 20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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