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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n May 19. 2024

외출

10일에 한 번은 나갔습니다. 안 나가기를 결정하면 안 나갈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나가는 주기가 10일 정도였습니다.


목적 없는 외출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으므로 비합리적입니다. 


구실이 필요할 때 아이스커피가 생각났고 반가운 마음으로 그것을 사 오기로 했습니다.


나가기 전까지 그렇게 굼뜰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껏 귀찮았습니다.


깨끗이 씻고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보송한 상태로 나가는 것도 좋았습니다.


검은색 민소매에 검은색 후드집업, 검은색 패딩을 차례로 입었습니다. 


하의는 레깅스를 입었는데 종아리가 뻣뻣했습니다. 오래 움직이지 않아서 다리가 부은 탓입니다.


저번 주에 사고 한 번도 안 써본 모자를 썼습니다. 


양말이 싫어 슬리퍼를 신었습니다. 지금 날씨면 금방 발이 얼 거란 걸 알았지만 이번 한 번은 버틸만할 것입니다.


어느새 길어 나온 발톱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러나 나가면 무관심해질 것이므로 이내 생각을 접었습니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한없이 다듬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문을 나섰습니다.


쌀쌀했습니다.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준비한 노고를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알알이 피부 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카페로 향하면서는 하필 오랜만에 나온 날 이렇게 추울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시린 발가락을 오므렸습니다. 발이 하얘졌습니다. 추워서 그런 건지 힘을 줘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손을 숨길 수 없음에 찰나 주저했습니다.


더 이상 볼 일은 없었으나 외출한 티를 더 내고 싶었습니다. 먹을 만한 디저트와 차를 사서 한 아름 안으니 금의환향하는 기분이 완성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핼쑥했습니다.


그리고 숨을 고르자, 차가운 공기가 섞여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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