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함께 걷는 것만 남았다.
끝이 가까워진 날,
비가 그친 길 위에서 네 명의 중년 아저씨들을 마주했다. 배낭도 없이 한 손에 물 병을 하나씩 들고 나란히 걷고 있다.
끝없는 길 위에 선 뒷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중년이 되어 순례길을 함께 걷고 있는 사총사. 그들의 사연은 모르지만 왠지 모를 부러움이 생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늘 우리와 순례잡기를 하고 있다.
그동안 친구와 난 각자 걷고, 함께 걷기를 반복했지만, 오늘은 순례길 마지막 날인 만큼 다른 날보다 함께 걷는 시간이 많았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 맞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 옆에 순례길을 같이 온 친구 N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전 직장에서 만났다. a회사로 이직을 앞둔 내게 Y는 N을 소개해줬다. Y는 대학교 때부터 친구이며, 같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본인이 h회사에 다닐 때 같이 일했던 동료가 현재 a회사에 다니고 있다며, N을 나에게 소개해줬다.
세상의 긍정을 다 가진 친구라 했다.
N은 나와 다른 본부였지만, N의 본부장님과 우리 본부장님과 절친했으며, 같은 실을 사용했다.
퇴근 후 어색했던 한 번의 저녁식사 계기로 우리 둘은 친해졌다.
그렇게 Y 없이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새 Y보다 더 자주 보게 되었다.
나와 취향이 통하고, 언제든 YES라고 해주는 친구.
"지금 가야겠어. 산티아고로!"
내 한 마디에 우리는 한 달 뒤 산티아고까지 오게 되었다.
오래전 친구와 한 달간 유럽 여행을 한 적 있다.
나는 그녀와 절친한 사이라 자부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그 친구의 몰랐던 점을 많이 알게 되었다.
여행 중 일어난 사건들로 작은 상처가 조금씩 쌓여, 여행 후 그 친구와 멀어졌다.
나 또한 여행하는 동안 그 친구가 하는 모든 말에 날을 세워 반응했다.
나와 같지 않은 마음인 것 같아 서운함은 더 쌓였고, 끝내 풀지 못했다.
너무 소중했기에 그게 진실일까, 마음 터놓고 대화도 못 했다.
여행이 끝날 때쯤엔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해져 그 친구를 이해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꿍한 나의 성향이 어디로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반쯤 성공한 거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여행은 다른 의미로 잘 해내고 싶었고,
이만큼 왔으니 그 바람을 잘 이루었다 할 수 있겠지?
우리는 산티아고 시내가 보이는 마지막 언덕길에서 다시 멈춰 섰다. 언덕길에서 멈춘 덕분에 네 명의 아저씨들과 다시 멀어졌다.
큰 나무 아래 바위 위에 앉아서 산티아고를 한참 내려다봤다. 마지막이 보이자, 다시 시간을 멈춰본다.
끝이 보인다는 사실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후련하기도 했다. 언덕 나무 아래서 우리만의 산티아고 이별식을 했다.
언덕을 내려와 도시에 들어서니 다시 부슬비가 내린다.
판초를 뒤집어쓰니 315km를 걸어온 내가 왠지 더 멋져 보이는 느낌이다.
시내에 들어서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향기가 난다.
화장품 냄새인지, 향수 냄새인지 알 수는 없지만,
14일간 땀 냄새와 자연의 냄새만 맡던 나는 지나치는 사람마다 내뿜는 작은 향기에도 코를 벌름거린다.
아직 성당에 가려면 이십 분은 족히 더 걸어야 하는데 목표를 이뤘다는 사실보다,
이 도시의 향기에 괜스레 가슴이 두근대고,
저 바닥에 처박혀있던 설렘이 튀어올라와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드디어 길의 끝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옆 골목으로 들어가니 종소리가 나를 안내한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광장으로 들어간다.
광장에 도착하면 소리 지르며 흥분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는데,
나는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처럼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친구와 나는 광장 끝 건물의 기둥에 기대어 조용히 앉아있었다.
다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지만, 몰려들어오는 사람들의 환희를 지켜보는 것으로 함께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에는 도착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벅찬 감정을 주체 못 해 저 멀리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뛰어 들어오는 사람,
함께한 순례자와 얼싸안으며 토닥여 주는 사람,
광장에서 다시 만난 순례자들과 안부와 기쁨을 나누는 사람
음악을 틀어놓고 한바탕 춤을 추는 사람,
그리고
조용히 자신만의 감상에 젖은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왔든, 어떤 길을 걸었던, 어떤 방식으로 왔든, 얼마나 오래 걸렸던,
모두의 목적지 이곳에 도착한 것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 준다.
나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처럼 엄청난 기쁨과 환희는 없었다.
오히려 그 사람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 행복의 순간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벌써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 같았다.
그렇지만 '이곳에 무사히 잘 도착했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혼자 걸었다면, 끝까지 걷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걷게 된 걸 축하해.
그리고 이 길을 함께해 줘서 고마워."
친구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웠던 돌바닥이 따뜻해질 때까지 한참을 한 방향을 바라봤다.
결국 이 길에서 내가 제일 좋았던 것은
목적지도 아니고, 걸어온 길도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었다는 것, 그거 하나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