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월. 아이들과 과자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다른 반은 과자 파티를 하는데 왜 우리는 안 하냐는 아이들의 원망에 못 이겨 1년 동안 하지 않았던 과자 파티를 열었다. 우리는 과자 파티를 하는 김에 영화도 같이 보기로 했다. 과자 파티 전날, 우리는 무슨 영화를 볼지 투표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뽑혔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더빙판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과 다른 영화를 찾았다. 여러 영화 중 가장 적게 봤다고 한 ‘드래곤 길들이기 3’를 보기로 했다. 귀엽기도 하고 나름 액션도 있어서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 좋아할 만한 영화였다. 실제로 아이들도 이전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교실 불을 끄고, 창문에 있는 블라인드도 모두 내렸다. 교실에는 어둠이 찾아왔지만, 아이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영화는 총 104분. 보고 나서 급식을 먹으러 가면 딱맞았다. 영화가 시작하자 교실에는 영화 소리와 과자 먹는 소리만 가득했다. 영화를 보는 도중 쉬는 시간 종이 쳤다. 은서가 조용히 나에게 왔다.
“선생님, 밖에 (놀러) 나가도 돼요?”
“뭐라고? 지금 영화 보고 있잖아.”
“여름이가 쌤한테 물어보라고 했어요.”
“이여름, 이게 무슨 말이야? 어제 영화 끝까지 다 보기로 했잖아. 너희들 재미있는 시간 보내라고 수업 안 하고 영화 보는 건데. 그렇게 물어보는 게 맞아?”
여름이는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고개를 숙여 종이에 뭘 적곤 했다. 아마도 영화를 보기 싫었나 보다. 그럴 수야 있다. 하지만 한참 영화를 보는 중에 다른 친구에게 말해서 밖에 나가자고 하다니. 하자고 해서 하는 과자 파티, 보자고 해서 보는 영화인데 반응이 이러니 나는 화가 나고 솔직한 마음에 짜증도 났다. 나는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여름이를 불렀다.
“여름아, 왜 그랬어?”
“경도*가 너무 하고 싶어서요.”
‘뭐라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깨달았다. 아니, 깨달아버렸다. 그래, 맞다. 아이들은 밖에서 노는 게 더 재밌다.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는 게 훨씬 재밌다. 쉬는 시간에는 밖에서 놀 수 있는데 굳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었던 거다. 영화가 재밌겠다고 말한 이유는 수업 대신 영화를 보기 때문이었겠지. 너희, 진짜 아이들이구나.
나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아직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서툴다. 민주는 자기 자리에서 전자칠판이 잘 보이지 않았고, 유은이는 벽에 걸린 달력을 보기 위해서 고개를 많이 들었다. 아이들이 지내는 교실도 이런데, 교실 밖은 어떨까. 코로나 시절, 엘리베이터에서 손소독제를 사용하려다가 눈을 다친 아이가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세상은 아이들이 지내기에 꽤나 힘들다. 아이라서 어른에게 뭐라고 안 할 뿐이다. 아니, 이미 말했는데 우리가 무시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하는 연습을 한다. 굳이 아이들 의자에 앉아도 보고, 굳이 무릎을 구부려 교실을 둘러보기도 한다. 내 눈의 시선만 낮춰도 많이 달라 보이더라. 최근에는 게시판 상단에 달려 있던 감정 자석을 밑으로 내렸다.
이야기가 끝나자, 여름이는 운동장으로 갔다. 그리고 교실에는 4명의 아이만 남아있었다.
*경도: 경찰과 도둑의 줄임말. 한 팀은 경찰이 되고 다른 한 팀은 도둑이 되어 경찰이 도둑을 잡는 일종의 잡기 놀이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