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이 길다. 내 동생이 나를 그릴 때는 일단 기다란 오이를 그리더라. 거기다 표정을 그려 놓고는 이제 그림을 마무리하겠다며 얼굴 우측에 마침표를 딱 찍는다. 화룡점정 아니, 화룡점점. 나는 긴 얼굴이 싫진 않다. 하지만 얼굴이 길다는 말은 좀 싫더라. 티는 안 내지만. 머리카락을 잘못 자르면 진짜 오이가 되어버리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자르고 차에 탔더니 아내가 말했다.
“얼굴이 길어졌네? 그래도 키는 더 커 보인다.”
그렇다. 실패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커트를 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조금 길어 보이더라. 극복해 보려고 앞머리를 만졌건만. 아내에게 들은 첫마디가 ‘얼굴이 길어졌네’라니. 아내는 솔직하게 말을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날따라 솔직해져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나는 시원해진 뒷목과 함께 출근을 했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 시선이 느껴졌다. 보통이면 바로 말을 걸 텐데, 약간의 버퍼링과 함께 첫마디가 들렸다.
“선생님! 얼굴이 길어졌어요~!”
그렇다. 실패다. 그러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키는 더 커 보여요.”
고맙다. 참 고마워. 아이들 눈은 정확하다고 했는데, 진짜 그렇네. 솔직해서 탈이다. 그렇게 나는 이틀이나 긴 얼굴로 남모를 고통을 받았다. 사실, 이런 말은 귀여운 축에 속한다. 내가 정말 참지 못하는,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리는 말은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 '이제 10분 남았다.' 연수가 수업 중 뒤를 돌아보고서는 했던 말이다. 수업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다는 뜻이자 쉬는 시간까지 10분 밖에 안 남았다는 뜻. 곱씹어보니 올해는 3번 정도 들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만 기분이 안 좋더라. ‘수업이 재미가 없나?’, ‘나랑 같이 있는 게 지루한가?’ 시계를 보고 무심코 튀어나온 혼잣말이건만 내 머릿속에는 폭풍이 휘몰아친다. 아이들은 꽤 솔직하니까. 그래서 나는 연수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 속상하다고. 나랑 같이 있기 싫어서 하는 말 같다고. 연수는 당황한 눈치였지만, 나는 그 말을 뱉고 말았다.
나는 아홉 살이 하는 말에 매일같이 흔들린다. 고작 9살. 아이들과 교실에서 꽤 밀도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없던 정은 생기고 있던 정은 더 커진다. 직장이라고 말은 하지만 거리를 두는 게 쉽지 않다. 아이들도 사람이니까. 사람을 대하는 일에는 정이 빠지기 쉽지 않다.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나. 반대로 몸이 가까우니 마음도 가까워지더라. 나는 연수에게 ‘지루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속으로만 생각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지루하다’는 말을 내뱉으면 그 단어가 조금이라도 현실이 될 것만 같아서.
다른 하나도 말해야지. '안 그랬어요.' 바로 거짓말이다. 2학년은 거짓말을 꽤 하는 편이다. 최근에도 있었다. 승한이, 하이 그리고 아린이는 *행복배달부다. 배달할 우유를 각자 나누고 나니 하나가 남았다. 승한이와 아린이는 남은 우유를 동시에 집었다. 그러자 승한이가 소리를 질렀다.
“야!”
놀란 아린이는 손을 놓았고, 승한이는 그 우유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그 광경을 본 하이는 승한이에게 찾아가서 말을 걸었다.(하이와 아린이는 단짝이다.) 하지만 승한이는 하이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걸어갔다. 교실 분위기가 사뭇 이상해질 때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연구실로 갔다.
승한이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고 말했고, 하이와 아린이는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교실에 분명히 같이 있었다. 하이는 하민이에게 말을 걸었다고 했고, 승한이는 하이가 거는 말을 못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교실에 분명히 같이 있었다. 그러자 승한이는 말을 바꿨다.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아주 작게. 이미 수없이 경험한 그저 평범한 거짓말이거늘. 나는 또 감정적으로 대했다. 그렇게 승한이는 나에게 혼이 났다.
1교시가 끝날 때까지 상담은 이어졌다. 처음엔 화를 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승한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승한이의 진짜 마음을 안다고 말했다. 네가 우진이를 대할 때의 그 얼굴, 네가 준우에게 말하는 말투. 그게 너의 진짜 모습이지 않냐고. 사람은 누구나 착한 마음과 나쁜 마음이 있는데, 방금은 나쁜 마음이 이긴 것 같다고. 단짝을 대할 때 그 마음을 잘 기억하고 떠올리자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는지도 덧붙여 물어봤다.
사실, 그럴 나이다. 2학년 담임을 처음 맡았을 때는 정말 많이 놀랐다. 저렇게 순진무구한 눈빛에서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이 나오다니. 동료 선생님들에게 아무래도 성악설이 맞는 것 같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사실 아이들은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잘못으로 혼나는 걸 피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게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진짜 딱 아홉 살이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에게 거짓말의 결과를 꼭 말해준다. 꽤 적나라하게.
아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프로처럼 행동하라고. 감정적인 상황일수록 자신이 정말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 이 직업은 8년이나 지났는데도 내가 아마추어처럼 행동하게 만들까. 늘 하는 생각이지만 참 쉽지 않다.
* 행복배달부: 우유배달부가 냉장고에서 우유 23개가 담긴 초록 박스를 가져오면, 그 우유를 신청자에게 갖다 주는 역할. 해당 명칭은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