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출근하다’라는 단어가 사라진다면 대신 ‘버티다’를 사용하겠다. ‘일하러 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텐데 그래서인지 별로다. 감정이 없달까. 버틴다는 말이 조금 더 꿈틀거리는 것 같다. 보통 출근만 하던 내가 오랜만에 버틴 적이 있다.
사흘 전, 나는 우리 학교에서 육상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초중학생 육상대회에 다녀왔다.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5시를 넘은 시각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과 같이 저녁 회식도 해야 해서 식당에서도 같이 있었다.(그와중에 한 학생이 가게 문 유리를 깨버렸다.) 교사는 나 포함 3명이나 있었지만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그 무엇보다 신경이 계속 쓰였다. 그렇게 나는 편하지 않은 체로 8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내 위장은 일하지 않았고, 밤에는 머리가 엄청 아팠다. 아팠던 머리는 토를 두 번 하고 나서야 괜찮아졌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출근을 했다. 짜증나게도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안 아팠기 때문이다. 차마 병가를 쓸 수 없었다.
이틀 전, 그래서 나는 수업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통합* 교과서도 살펴보지 못한 체 수업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버텨야만 했다. 그렇게 오늘 할 부분을 폈더니 당황스러웠다. 위인을 알아보는 수업. 그것도 관련 도서를 읽고 말이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로 시작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알 것이다. 교과서에는 노래를 배우고, 책을 통해 새로운 위인을 살펴본 후 가사를 바꾸는 활동을 하도록 구성 되어 있었다. 이 많은 걸 1차시(40분) 안에 해야 한다니. 누가 어떤 마음으로 계획했단 말이냐.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부랴부랴 활동지를 만들었다. 교과서에는 ‘이렇게 활동을 하세요’라는 말은 있지만, 정작 활동지는 없었다. 빈칸도 없더라. 아이들은 활동지를 들고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난장판. 옳거니, 정말 딱 어울리는 단어다. 지혜는 책을 들고 와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상민이는 책을 찾다가 금방 지루해 졌는지 바닥에 앉아 있고, 하이와 아린이는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 봐도 저학년이 참고할 만한 책은 없었고, 그나마 찾았던 그림책 전집은 문장이 어려워서 아이가 혼자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맞춤법을 틀리는 학생도 지도해야 했다. 준비하지 못한 수업이라 이 어수선함을 인정해야만 했지만, 알면서도 마음은 불편하고 짜증났다. 오늘 하루 정도만 어수선하자며 그렇게 2교시를 버텼다.
교실로 내려갔다. 두 모둠씩 모여서 가사 바꾸기를 시작했다. 매번 하던 가사 바꾸기 수업은 지루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다.
‘고구려 세운 동명왕’ 대신 ‘슛 잘한다 이강인’
‘신라 장군 이사부’ 대신 ‘나비 박사 석주명’
‘황산벌의 계백’ 대신 ‘필즈상 받은 허준이’
바꾼 가사를 듣고는 곧바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이 낸 가사는 참 좋았다. 이곳 저곳에서 자신들이 바꾼 가사로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렸다. 재미가 있으니 아이들은 웃었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니 아이들 목소리는 더 고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준비 없는 수업은 안 하는 게 나을 뻔했다고 생각했는데. 안 풀린 일들만 가득해서 하루만 버티자고 했는데. 아이들에게서 나온 말들은 살아있었고, 살아있는 말들은 나를 움직였다. 그날 하루 나는 버티러 왔는데, 아이들에게 그 하루는 삶이었다. 내가 그냥 버틴다고 치부할 수 있는 하루가 아니었다. 삶이었기에 나에게 다시 생기가 돋지 않았을까. 되돌아보니 나는 버티지 않았다. 덕분에 하루를 살아냈다.
*통합: 흔히 말하는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 바른 생활 과목을 뜻한다. 요즘은 ‘즐거운 생활’이 아니라 ‘계절’, ‘인물’과 같은 이름으로 되어 있다.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