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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단상집 1

by 건우

새 신발

새로 산 신발이 도착했다. 푸마 팔레르모 파란색. 정말 예뻤다. 나는 다음날 바로 신발을 개시했다. 신나는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했다. 가는 길에도 아내에게 신발과 옷이 잘 어울리는지 물어봤다.

점심 시간, 오늘은 목요일이라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날이다. 한창 급식을 먹다가 승한이가 물어봤다.

“선생님, 축구 하러 나올 거예요?”

“응?”

“축구 하러 올 거예요?”

“..그럼!”

아뿔싸. 나 오늘 새 신발 신고 왔는데. 내가 나오길 바라며 물어본 그 아이의 눈동자를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발바닥으로만 차면 되겠지’

새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듣기 좋았다. 나는 오늘 공을 저 하늘 높이까지 찼다.




좋아하는 사람

“나 우리 반에 좋아하는 사람 있어.”

초등학교 교사는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니 본의아니게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야기가 그냥 들릴 때도 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딱 맞을 때처럼.

“주땡땡이야.”

잠깐. 우리 반에는 주씨가 한 명이다.

“끝자리만 말해주면 안 돼?”

“안 돼. 비밀이야. 착하고, 엄청 착하고.. 내 짝꿍이야.”

비밀이라면서 그냥 다 말해준다. 나도 교실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던 때가 있다. 그때는 뭐랄까 따져보면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크다. 비록 학교가 이유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떠올리며 웃픈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다들 그랬듯 말이다. 다들 그랬던 일이 여기도 일어난다. 너희는 나중에 지금을 기억할까? 사랑 이야기가 들리니 햇빛이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선생님

“선생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하윤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과 손짓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상민이가 토요일, 일요일에 선생님 생각이 안 난대요! 사랑하는 선생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도 얼마나 내 생각이 나겠냐만. 나는 하윤이의 ‘사랑하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좋다. 아이들은 한번씩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곤 한다. 2학년을 처음 맡았을 때만 해도 ‘사랑해’라는 표현이 어색했다. 그래서 첫 2학년 아이들에게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지 못했다. 실제로 사랑하지도 못했고. 지금은 지나가는 말로 사랑을 내뱉곤 한다. ‘선생님이 너희를 사랑하고 아껴서 그래’라는 식으로.

내가 진짜 아이들을 사랑하나? 나는 그냥 너희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 보고 즐거워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너희들이 거짓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진실하게 살면 주변에게 미움 받지 않고 사랑 받으며 살아갈 테니까. 나는 그냥 너희들이 많이 놀았으면 좋겠다. 놀면서 많이 져봤으면 좋겠다. 지금 해본 실패가 튼튼한 바닥이 될테니까. 여긴 그렇게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곳이니까.

그래. 사랑이라고 부르자. 나는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인생은 연필

연필을 쓰다 보면 끝이 뭉뚝해진다. 뾰족한 부분을 쓰려면 하는수없이 연필을 돌려야 한다. 그렇게 쓰다보면 또 뭉뚝해진다. 또 연필을 돌린다. 그러면 또 뭉뚝해진다. 계속 뾰족하게 쓸 수는 없다. 언젠가는 뭉뚝하게 써야 한다. 그렇게 쓰다보면 언젠가 뾰족하게 쓸 날이 온다.




어린이는 즐겁다

연수 일기를 검사했다. 재미있었다는 말이 많이 등장했다. 수영해서 재미있고, 감자를 캐서 재미있고, 고기 구워 먹어서 재미있고, 코딩을 해서 재미있고, 자유형, 평영, 접영을 해서 재미있단다. 그렇게 재밌나? 그냥 수영을 했다고 말하면 될 것을. 그냥 감자를 캤다고만 해도 될 것을. 진짜 재밌어서 적은 건가? 일기에 감정을 적으라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재미있는 일이 많은 이유가 뭘까?

부럽다. 사실 부러웠다. 나도 뭘 많이 하긴 하는데. 왜 재미있지 않을까. 재미의 역치값이 올랐다며 나이를 탓하지만 씁쓸한 건 여전하다. 생각해보면 재미 대신 피곤을 느꼈다.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야. 작은 것에 감사하기 이전에 작은 것에 재미있어 봐야겠다. 오늘도 하나 배웠다.




채점해주니까 뿌듯해요

우리 반은 수학 한 단원이 끝나면 단원 평가와 함께 ‘작은 선생님’ 활동을 한다. 작은 선생님은 단원 평가를 채점해주는 역할이다. 1번 문제는 주빈이가 2번 문제는 지혜가 이런 식이다. 오늘 윤아는 1학기 처음으로 작은 선생님을 맡았다. 매번 하고 싶어했지만 먼저 문제를 다 푼 사람부터 순번이 돌아가기 때문에 문제를 늦게 푼 윤아는 차례를 계속 기다려왔다. 수업이 끝나자 윤아는 나에게 말했다.

“작은 선생님해서 힘들긴 한데, 채점해주니까 뿌듯해요!”

뿌듯하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니 조금 벅차올랐다. 자주 듣는 ‘고맙습니다’나 ‘감사합니다’가 아니라서 그럴까. ‘뿌듯해요’라는 말이 참 예쁘게 들린다. 나는 못말했는데. 이 자리를 잠깐 빌려 본다.

윤아야. 선생님도 윤아가 좋아하니까 뿌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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