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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by 건우

“어! 축구 잘하는 선생님이다!”

다른 반 아이들도 인정할 정도다. 나는야 자타(반)공인 축구를 잘하는 선생님. 공을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 공을 세게 그리고 아주 멀리도 찰 수 있다. 공을 차고 달리면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여기에서만. 11시 45분부터 20분 동안 나는 손흥민이다. 70M를 질주하며 상대 수비수를 떨쳐냈을 때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그래서 아이들은 나랑 축구를 하고 싶어라 한다. 하지만 슛은 때리면 안 된다. 그건 반칙이다.


사실, 난 축구를 잘 못한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여러 지역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흥미롭게도 거기에는 지역 기반 축구 팀이 있었다. 김해팀과 양산팀이 양대산맥이었고, 거창팀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를 모아 놓은 팀이 존재했다. 일명 잡팀. 나는 잡팀이었다. 사실 이름만 잡팀이지 축구는 가장 잘했다. 나 빼고.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얼버무려보지만 명실상부 벤치워머다. 끈끈한 우정 덕분에 한번씩 출전 기회를 잡는 수비수였다. 아이들에겐 비밀이다.


“우와! 어떻게 했어요?”

나는야 아림초 이은결. 마술도 잘한다. 준우가 마술을 할 수 있다며 보여주길래, 나도 화답 공연을 선보였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동전을 왼손에 넣으면 사라진다. 동전이 손등을 통과하게 할 수도 있다. 신기한가보다. 아이들은 신기하면 자기도 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니냐면서. 한동안은 쉬는 시간마다 어떻게 하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손등에 있는 검지 뼈와 중지 뼈 사이에 동전을 끼워서 누르면 동전이 자연스럽게 손을 통과한다고 말했다. 아이들 손이 많이 아팠을 거다.


초등학교 선생님한테는 좋은 거 아니냐고? 물론 다 잘하면 좋다. 초등교사는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하니까. 감사하게도 나는 초등교사인데다가 또 감사하게도 평균 이상으로 해내는 분야가 많다. 피아노도 칠 줄 알고, 노래도 부를 줄 알고, 캐릭터도 귀엽게 그릴 줄 알고, 축구도 할 줄 알고, 일러스트레이터도 다룰 줄 알고, 레크레이션 진행도 할 줄 안다.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말, 다방면으로 잘한다는 말이 처음에만 듣기 좋았다. 그 말이 나를 머뭇거리게 할 줄은 몰랐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음을 깨달았을 땐, 하나만 잡고 고집 있게 해보지 못한 후회만 늘어놓았다. 지금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딱이구나.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 좋은 정도라는 생각에 이 직업을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만 같다.


먹먹하다. 아이들과 지내는 일상이 참 좋은데, 다른 일상이 탐난다. 내 작은 잘함들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지만, 나는 진짜 잘함 하나를 갖고 싶다. 어중간한 내 안에는 아직 평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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