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 실력
“난 가위바위보 못한단 말이야!”
”하이야 가위바위보를 못하는 건 없어~ 운이야 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하이를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하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평소에 내던 거 말고 다른 걸 내라고.
가위바위보! 비겼다.
가위바위보! 또 비겼다. 이제 결판이 날 것 같다. 나는 속으로 누군가를 엄청 응원했다. 한번만 제 말이 맞게 해주세요.
가위바위보! 세 명은 묵을 냈고, 한 명은 가위를 냈다. 그렇게 오늘 또 하이는 졌다. 이럴 수가. 집에 가기 전까지 하이 기분은 완전 똥이었다. 하이는 친구들 몰래 눈도 여러 번 비볐다.
사람이 그렇더라. 객관적으로 맞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더라. 나도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긴 아는데 결국은 또 나만 지잖아. 이럴 땐 별다른 수가 없으니 나는 그저 북돋아준다. 한번만 더 해보자고. 이번엔 다를 거라고. 실낱보단 조금 더 클 희망을 붙잡으며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다.
난 다음에도 귓속말을 할 거다. ‘오늘은 보자기 어때!’
브랜딩은 이렇게
아이들은 마라탕을 좋아한다. 아니 환장한다. 마라탕이 나오는 날에는 남자고 여자고 상관 없이 급식이 이렇게만 나오면 좋겠다고 말한다. 국도 어쩜 그렇게 잘 먹는지. 내가 된장국이라면 서운하겠다. 근데 나는 급식에 나오는 마라탕을 반대한다. 기름기가 많은 국물에 가공육도 많이 들어가는 데다가 맵기까지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먹기에는 영양적으로만 봐도. 사실 내가 안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마라탕이 나왔다. 난 급식소에서 윤아에게 물었다.
“어때 마라탕 맛있어?”
“마라탕은 안 봐도 맛있어요!”
마라탕만큼 브랜딩을 할 수 있다면야 세상 무서울 게 없다.
볼 빨간 아홉 살
2교시, 오늘은 운동장에서 수업을 했다. 풍차 달리기를 했다. 4팀으로 나누어 동그란 트랙을 달리는 이어달리기 놀이다. 몸을 풀고 바턴을 넘기는 연습을 했다. 생각해보니 바턴을 주는 것도 처음이고 받는 것도 처음이겠구나? 순간 귀여웠다. 네 구역을 돌아다니며 한 명씩 주는 방법과 받는 방법을 손에 손을 잡아 알려주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놀이를 시작했다. 각자 정해진 곳에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뒤쪽 팀이 앞지르기도 하고, 바턴을 놓치기도 하고 보는 맛이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신발을 벗던 하람이가 나에게 말을 했다.
“하루종일 이것만 하고 싶어요!”
최고의 찬사였다. 3번 연달아 경기를 하고 조금 쉬라고 했더니 연습해도 되냐며 다시 트랙으로 나가던 너. 조금 더 빨라지겠다고 헤어 밴드를 끼며 못생긴 얼굴을 자처하던 너. 말하는 네 두 볼은 너무나도 빨갰다. 거짓말탐지기 말고 진실탐지기에 불이 들어온 것처럼. ‘삐- 진실입니다. 진짜 하루종일 하고 싶어요 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오늘 십월이죠?”
“십월이 아니고 시월..”
순간 깜짝 놀랐다.
매운 음식 칭찬
지혜는 급식 시간에 칭찬을 받는 날이 많다. 물론 내가 매운 음식을 먹는다고 칭찬을 해주는 건 아니다. 점심을 먹고 있으면 지혜는 나에게 와서 꼭 말한다.
”선생님 저 깍두기 더 받으러 가요.”
그러면 나는 그냥 ‘그렇구나’ 할 순 없다.
”(눈을 크게 뜨며)우와~ 진짜? 맵지 않아?”
”네! 맛있어요!”
그렇게 지혜는 관심 한 숟가락과 칭찬 한 숟가락을 더 먹는다. 일기에도 적혀 있다. 중국집에서 지혜가 짬뽕을 시켰다. 짬뽕을 먼저 먹어본 할아버지께서는 맵다고 하셨는데 지혜는 먹을만 했는지 맛있게 먹었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매운 걸 잘 먹는다고 친창(칭찬)을 해주셨단다. 그래서 행복한 날이란다.
급식 시간에 그냥 ‘그렇구나‘라고 말할 걸 그랬나. 내가 지혜를 매운 음식 잘 먹는 아이로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지혜 일기에 답글을 적었다.
’지혜는 매운 음식을 잘 먹더라~! 그래도 매운 건 몸에 안 좋으니 적당히 먹어야 해요! 매운 음식 먹는 거 아니더라도 지혜 칭찬 많아요~’
땀 흘리며 노는 아이에게는 웃어주세요
이를 닦고 자리로 돌아가다가 준우를 만났다. 준우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내 책상 앞으로 가더니 쭈그려 앉으며 구석에 숨었다. 잡기 놀이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순간 준우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있는 힘껏 입고리를 잡아 당겼다. 씨익. 준우는 다시 놀러 나갔다.
내가 잡아 당긴 미소는 준우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걸 바랐다. 만약 내가 무관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면 준우는 흠칫 했을 테지. 교실에서 뛰어서 내가 혼나려나 하며. 놀던 흥이 다 깨져버렸을 거다. 그러지 않아 다행이다.
꼬맹이
“선생님! 올해 처음 쟀을 때 113이었는데 지금 120이거든요? 많이 큰 거죠? 7센치나 컸어요. 근데 애들이 꼬맹이래요.”
사람들은 다 그래. 너가 지나온 과정 말고 결과만 보곤 한단다. 때문에 주저 앉을 때도 있어. 때문에 남과 나를 비교할 때도 많지. 하지만 그러지마. 그러지 않아야 해. 올해 너가 그만큼 컸다는 걸 너가 누구보다 제일 잘 알잖아. 그러니 결과에 휘둘리지마.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건우야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