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민이가 저한테 절교하재요.”
지민이와 윤아가 싸웠다. 문제는 둘 다 화해를 안 하고 싶어 했다는 거다. 그날따라 자기감정에 충실했다. 아이들의 장황한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진상 파악을 시작했다. 저번 주 금요일, 지민이가 윤아에게 다음 주 월요일에 급식을 먹고 나서 같이 가자고 말했단다. 월요일이 되자 지민이는 윤아에게 확인차 같이 가는 걸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윤아가 오늘은 유림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지민이는 절교하자는 말을 했단다. 말을 이어가던 지민이는 중간중간 눈물을 흘렸다. 나는 윤아에게 저번 주에 지민이가 말한 걸 들었는지 물었지만 윤아는 못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이내 윤아도 눈물을 글썽였다.
“나도 다른 사람이랑 가고 싶을 수 있잖아!”
같이 가는 게 뭐라고. 급식소에서 우리 반까지 100걸음도 채 안 될 그 거리를 같이 가겠다고 이 사달이 났다니. 남학생은 그런 거 없다. 그냥 누가 먼저 밖에 나가냐다. 누가 먼저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하고 있느냐다. 그래서 밥을 입에 부어 넣고는 얼른 자리를 비운다. 하지만 여학생은 조금 다르다. 밥을 다 먹고 식판을 정리하고 나면 다시 밥을 먹었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귓속말을 시작한다. 다 먹고 자기랑 같이 가자고. 주빈이도 그랬고, 아린이도 그랬고, 지민이도 그랬다. 그러면 먹고 있던 아이는 숟가락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한 번의 끄덕임으로 얘랑 함께 있을 30분을 번다.
때로는 급식을 먹기 한참 전부터 누구랑 갈지 말하기도 한다. 이 고백은 오늘 하루를 너에게 바치겠다는 뜻이다. 그 고백을 들은 순간부터 그 친구와 같이 놀 거니까.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오로지 너랑 놀겠다는 뜻이니까. 양치하러도 같이 가고, 줄넘기하러도 같이 갈 게 분명하다. 같이 간다는 건 너가 좋다는 뜻이고 너를 기다린다는 뜻이고 너를 생각한다는 뜻이고 너는 내 찐친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우정은 그냥 같이 가는 거다. 그래서 볼일을 봐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까지도 같이 가자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같이 갔던 짧은 거리를 투박하게 묶어 기나긴 우정을 엮어낸다.
어제는 문득 ‘나한테는 같이 가자고 하는 친구가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가 웃겼다. 나도 같이 가는 사람이 있다. 여긴 없고 집에 있다. 우리는 전기차를 탄다. 사는 집에 가정용 충전기가 없어서 강변에 있는 충전소를 이용한다. 그래서 자동차를 강변에 충전해 놓고 걸어서 집으로 오곤 한다. 손을 잡고 걸어올 때면 지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오빠 조금 천천히 가면 안 돼? 나 숨 차.”
안으면 내 턱이 이마에 닿는 지혜에게 내 발걸음은 거친 숨이 올라올 정도였다. 다리를 더 벌리거나 더 빨리 움직였겠지. 나와 같이 걸으려고 그랬겠다. 나는 ‘아차!’하며 발을 천천히 뗀다. 손을 잡지 않을 때는 내가 앞질러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오빠는 왜 앞에서 혼자 걸어가냐며 나를 세워주곤 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겼다. 나는 종종걸음을 걷는다. 속도는 그대로 보폭은 좁게. 종종걸음은 내 본성에 반하는 일이라 늘 서툴다. 그래도 지혜와 같이 걸으려고 그런다.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건 숨 쉬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당연하지만 결코 당연할 수는 없는 일. 우리는 수많은 것을 같이 해왔다. 혼자가 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우리는 ‘같이’였다. 사춘기를 거쳐 독립에 이르지만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해야만 하는 게 삶이다. 그래서 당연하지만 결코 당연할 수 없는 일. 같이 하려면 서로 끊임없이 맞추어야 한다. 때로는 너가 나에게, 때로는 내가 너에게. 이를 감수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같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급식소 출구를 바라보며 친구를 기다린다. 거뜬히 추위를 이겨낸다.
지민이와 윤아의 냉랭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렇다. 2교시 수업을 교실에서 하려 했는데 아이들이 계속 어디서 하는지 물어봤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고, 작은 꾀를 부렸다. 밖에 나갈지 말지는 나중에 말해주겠다며 미루고 미뤘다. 나가고 싶은 아이들은 까맣게 애가 탔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을 절망에 빠뜨린 다음, 통합 교과서를 보며 말을 꺼냈다.
“아.. 그럼.. 운동장에서 동그라미 공대장 놀이 한번 해볼까?”
아이들은 신이 났다. 윤아도 신이 났고, 지민이도 신이 났다. 얼떨결에 둘은 얼싸안았다. 참으로 감사한 얼떨결이다. 둘의 포옹은 겨울의 햇볕보다 따스했다. 나는 따스함을 지닌 채 앞문으로 갔다. 그리고 불을 껐다.
“나가자!!”
“예!!”
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운동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같이 걸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걸었고 아이들은 총총걸음을 뛰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나갔다.
(글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