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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글자만큼

by 건우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돌아본다. 사실 돌아보는 건 아니고 보는 정도? 그냥 한번 거창하게 표현해 봤다. 교실 앞 전자칠판 오른쪽에는 자기감정을 표시할 수 있는 ‘오늘 내 기분은?’ 코너가 있다. 코너에는 여러 감정이 붙어 있다. ‘행복하다’, ‘기쁘다’ 같은 감정도 있고, ‘화나다’, ‘걱정되다’ 같은 감정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20개는 넘는 듯하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지금 자기 감정과 가장 비슷한 감정 밑에 자신의 이름표를 둔다. 그러면 1교시가 시작할 때 내가 읽는다. ‘기쁘다에 진우, 지혜’, ‘화나다에 재운이’ 이런 식이다. 다 읽고 나면 덧붙여 말한다.


“자기 감정 이야기해 볼 사람?”


거짓말 안 하고 6~7명을 제외한 모든 아이가 손을 든다. 신기하다. 다들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오늘 체육이 있어서 행복하고, 주말이 다가와서 기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걸어 다녀야 해서 짜증 난다고 말한다. 고작 한 문장인데 그걸 말하고 싶어서 다들 안달이다. 가끔은 아침에 함께 책 읽는 시간이 조금 길어져 감정 읽기를 안 하고 넘어가려 하면 난리가 난다. 난리 통을 잠재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뽑기를 진행한다. 딱 5명만 발표하고 휙 넘어간다.


아이들은 이상하리만치 감정 읽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 이유를 이틀 전에야 알았다. 그날은 집에서 생긴 복잡한 감정을 학교까지 끌고 온 날이었다. 가져오고 싶지 않았지만, 자동차 문에 옷소매가 낀 것처럼 나를 따라왔다. 질질 끌려온 까만 감정은 기어코 교실에서 자기가 있음을 티를 냈다. ‘차공만 안 읽어요?’라는 질문에 개인 독서를 하라고 했고, ‘감정은요?’라는 질문에 국어책을 펴라고 했다. 콧소리가 전혀 섞이지 않은 낮은 목소리. 삭막하게 1교시 수업을 끝냈다. 나는 그냥 책상에 엎드려져 있고 싶었다. 그런 날이었다. 선생님도 그런 날이 있다.


한창 쉬는 시간이 지나가는 와중에 우진이가 나에게 왔다. 그리고 물었다.


“쌤, 어디 아파요?”


의외였다. 그런데 웃기게도 정말로 어디가 아픈지 묻는 말이었다. 평소 우진이를 잘 알고 있기에 확신까지 할 수 있었다. 아이 질문이라 그런지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머리 아프다고 했어도 되는 그런 거짓말 말이다.


“응. 몸 말고 마음이 조금 아프네.”


사실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었다. 안 좋은 기분을 좋게 바꾸면 되는데, 그냥 안 좋고 싶었다. 그대로 있고 싶었다. 그런데 우진이의 너무 솔직한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해버렸다. 그러고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몹시 신기하게도 내 마음이 대답한 만큼 괜찮아졌다. ‘마음이 조금 아프네’라고 말한 일곱 글자만큼 괜찮아졌다. 상담하시는 분들이 왜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지 깨달았다. 우진이는 위로할 마음이 전혀 없었겠지만, 나는 위로를 받아버렸다.


2교시 시작종이 쳤다. 나는 일곱 글자만큼 괜찮아진 마음을 이끌고 감정 코너 앞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선생님 감정만 말할 거야!”


떼를 썼다. 나는 손으로 ‘짜증 나다’와 ‘속상하다’를 가리켰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 지금 선생님은 짜증이 나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그저 ‘그렇구나’하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난 순간, 또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여덟 글자만큼 마음이 괜찮아졌다. 내 감정을 표현해서 그런 건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 건지. 내 사정은 꺼내지도 않았고,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 감정 토로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던 아이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던 너희들. 침묵이라는 생각지 못했던 공감에 내 마음은 이내 평온으로 향했다.


나는 이제 안다. 확실히 안다. 우리 반이 일 년 동안 평안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정을 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표시하며 작은 위로를 받았을 테다. 같은 감정을 표시한 친구 이름표를 발견하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면서 말이다. 주체하기가 힘들 땐 발표까지 하며 감정을 토로했고, 덕분에 쉬는 시간마다 신나게 놀았을 테다. 한 문장밖에 안 되는 짧은 말이었지만 우리는 말하는 만큼 괜찮아져 왔다.


나는 또 작은 다짐을 한다. 말하게 하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그리고 뽑기는 이제 조금 줄여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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