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1월에 듣는 캐롤을 좋아한다. 흔히들 말하는 P 성향이라 계획적이진 않지만, 캐롤은 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기간이 더 좋다. 긴 연휴의 마지막 날보다 연휴 시작 전날 밤이 더 좋은 것처럼.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듣는 재즈는 떠오르는 기억들로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아이들과 같이 만든 모빌이 캐롤에 맞춰 춤을 출 때면 그곳은 더할 나위 없이 낭만이 가득했다. 눈이 온 다음 날, 차 타고 엄마 집으로 가는 길에 들었던 캐롤은 설경의 마침표를 찍었다. 순간을 더 아름답도록 돕던 음악은 이제 그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은 노래 가사에 기대어 미화되기도 하는데 난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음악만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사랑인가요~ 그대 나와 같다면 시작인가요~’, 이때는 내 공책도 궁이었다.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라~ 나를 찾지 말고 살아가라~’, 소리바다에 넣어두었던 노래를 들으며(괜히 센치해지면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내 미니홈피에는 애즈원의 ‘for a while’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먼데이키즈의 발자국, 엠투엠의 세글자, 버즈의 가시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꼭 불렀던 애창곡이었다. 대학 동기들과 음악교육관 옆 데크에 앉아 기타 치며 불렀던 ‘벚꽃 엔딩’과 피아노 연습실에서 남자 네 명이 모여 축제 준비를 한다며 불렀던 ‘정말 사랑했을까’는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은 나의 일기장이자 모두의 일기장이다.
오늘은 어떤 음악으로 기억될까.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진아의 노래 ‘계단’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모든 걸 해낼 순 없는 거잖아
잘하지 못해도 널 버리지 않아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도
우린 그대로야
오늘이 노래로 기억된다면, 내가 정할 수 있는 거라면 이 노래로 하겠다. 씁쓸한 마음을 노래로 위로해 본다. 초보 부장(나)의 일 처리가 매끄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말이다. 계원이 나에게 무언가 물어볼 때, 이미 알고 대답해 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결정할 일이나 전달할 일에는 머뭇거린다. 한 마디로 업무가 아주 미숙하다. 가뜩이나 아이들과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위치도 아닌지라 내가 생각한 선생님의 농도가 점점 옅어지는 느낌이 든다. 언젠간 옅어질 테지만 내가 직접 옅어지게 할 테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래서 씁쓸하다.
음악을 들어야겠다. 고집스럽게 음악을 들어야겠다.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도 이어폰을 꽂으면 영화 속 한 장면이 되는 것처럼, 아름다웠던 설경이 흘러나오는 음악에 더 아름다워지는 것처럼. 상황에 갇힌 내가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할 말들을 음악은 항상 건네주니까. 가사에 기대어 내 상황이 조금 미화되길 바라며 음악을 들어야겠다.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