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른쪽 무릎이 아프다. 계단을 올라갈 땐 괜찮은데 내려갈 때 통증이 있다. 그래서 학교 보건실에서 파스를 붙였다. 6학년 수업을 할 때 사건이 일어났다. 수현이가 나한테 오더니 내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다.
“무릎 다치셨어요?”
섬세한 자식. 선생님에게 관심도 가질 줄 알고. 다 컸구만.
“응. 상처 난 건 아닌데 요즘 무릎이 아프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수현이가 말했다.
“..관절 ..염인가요?”
니 일로 온나. 다시는 진지한 눈으로 말하지 마라.
2학년 2반 용훈이. 용훈이는 줄넘기를 어려워한다. 힘들어한다. 아니, 사실 못한다. 10개를 하는데 서너번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줄넘기를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줄을 돌리는 타이밍과 뛰는 타이밍이 달라서다. 줄을 너무 크게 돌리거나, 너무 높게 뛰거나. 사실 용훈이도 이유는 알 거다. 알아도 안 고쳐지니 문제지. 자기도 얼마나 답답하겠나. 줄넘기 시간에 용훈이는 마지막까지 서 있다.
사실 용훈이를 진짜로 힘들게 하는 건 줄넘기가 아니다. 시선이다. 친구들의 시선. 나는 용훈이 옆에서 계속 말한다. 힘내라고, 할 수 있다고. 연습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용훈이는 나를 보지 않는다. 주변을 본다. 못하는 자신을 보고 있는 친구들을 본다. 그리고 친구들도 말한다. 힘내라고, 할 수 있다고. 연습하면 된다고.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랬는데. 무관심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애써 무시하는 마음 좋은 친구. 그런 친구가 있다면 멋지겠다. 무관심해서 있는 지도 모를 지도.
참고로 가장 최근에 용훈이는 줄넘기 연속 23개를 성공했다.
식판을 들고 담임선생님에게 간다. 통과 여부를 심사받는다. 한 젓가락 더 먹고 오세요. 주관적이지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유는 있다. 나는 그게 어려웠다. 몇 젓가락을 더 먹여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이 아이에게는 한 젓가락, 저 아이에게는 두 젓가락. 결국은 하나라도 먹게 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초록색이라서 혹은 안 먹어봐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를 붙들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씨름한 적도 있다. 나는 딱 한 숟가락을 떠 놓고 앞에 앉아 있었고,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서는 숟가락을 잡을 새라 닭똥 같은 눈물만 닦았다.
한 젓가락이 아이에게 진짜 도움이 될까. 먹기 싫어하니 안 먹여야 할까? 엄연히 급식 지도를 해야 하는데, 먹기 싫다고 안 먹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때가 있지 않을까? 쓰디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지금은 내가 즐기는 것처럼. 그래도 하나 정도 먹게 하는 건 괜찮잖아. 아이도 선생님도 서로 부담 없지 않나?
사람을 대하는 건 수학이 아니라서. 그래서 힘들고 어렵다. 여러 책을 읽고 여러 선생님의 조언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에 그 공간의 아이는 거기밖에 없으니까. 나는 그저 내가 택한 방법이 그 아이에게 맞았기를 바라기만 한다. 새삼스럽게 아이들이 매년 다른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다.
첫 번째, 선생님은 빨리 밥을 먹고 싶어서 너희가 제대로 줄을 안 서도 출발한 적이 있다. 많다.
두 번째, 선생님은 김치를 자주 안 가져간다.
세 번째, 선생님은 너희가 밥 먹고 나가면 음식을 남긴다.
네 번째, 선생님은 밥 먹을 때 다른 선생님과 시끄럽게 떠들기도 한다.
다섯 번째, 선생님은 한 사람당 한 개라고 적힌 메인 음식을 높은 확률로 한 번 더 먹을 수 있다.
여섯 번째, 선생님은 몰래 디저트를 주머니에 넣고 연구실에 올라간 적이 있다.
일곱 번째, 선생님이 매번 벽을 바라보고 앉는 건 인사하고 싶지 않아서다. 확대 해석 금지.
여덟 번째, 선생님은 메뉴가 조금 더 매웠으면 좋겠다.
아홉 번째, 선생님은 너희가 버릴 임연수 구이랑 소고기무국에 들어간 소고기가 아까워서 대신 먹고 싶다.
열 번째, 선생님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급식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