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추단감. 이름 그대로 가을에 나오는 큰 감이다. 배처럼 아삭하고 떫은 맛 없이 달큼하다. 연한 초록빛을 내는 감 5개가 투명한 일회용 비닐에 싸져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익기 전에 따서 먹어도 맛있어요?”
한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그러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떫겠지. 내가 아는 맛있는 감은 주황색이니까. 아무도 먹지 않을 것 같았다.
종혁이는 종이 치고 나서도 교실로 올라가지 않았다. 별관 뒤로 갔다. 그리고 외곽을 따라 모래사장이 있는 반대쪽 구석까지 걸어갔다. 무리와 충분한 거리를 두고 나서야 멈춰 섰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이 오신 뒤에도 종혁이의 발은 아직 붙잡혀 있었다. 체육 시간에 생긴 화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윤성이. 윤성이. 종혁이가 윤성이를 막으라고 소리쳤다. 윤성이가 공을 몰고 오면 그렇게 이름을 내뱉었다. 이름 뒤에 한 마디씩을 더 붙였다. 수군거리는 이야기에도 한 마디, 웃는 소리에 또 한 마디. 심지어 자신을 향해 오지 않는 목소리에도 한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두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종혁이에게 침착하라고 했다. 하지만 종혁이는 내 행동에 또 한 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학생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종혁이는 왜 그래요?”
같은 반 서준이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눈치였다. 종혁이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신에 말하는 것을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자신에게 향하지 않은 말과 행동에도 반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주변에서 종혁이를 긁어서 그렇다. 종혁이가 지나가면 은근슬쩍 말을 내뱉고, 멀리 종혁이가 보이면 웃는다. 종혁이의 우스꽝스러움에 은근슬쩍 비웃으니 화가 날 수밖에. 참다가 한 마디. 참다가 한 마디. 위태롭게 쌓여간 한 마디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때면 종혁이는 교실에서 나가 무리와 충분한 거리를 둔다. 때로는 온몸으로 표출하기도 하는데, 이젠 성인 남성이 막기가 힘들다. 그래서 평소가 중요하다. 나는 서준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서준이가 반 아이들에게도 종혁이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말하고 싶었다. 가벼이 말할 수 없어 조금 뜸을 들이고 입을 뗐다.
“서준아, 너도 알다시피 종혁이는 일반적이지 않잖아…”
젠장. 다르다고 했어야지. 똑같은 사람은 없다고. 다를 뿐이라고. 그러니 다름을 인정하라고 했어야지. 나는 종혁이를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내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더 비참했다. 종혁이를 위한답시고 조심스레 한 말이 그딴 거였다. 그 뒷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고, 내 숟가락질은 현저히 느려졌다.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 중 어디에 속할까. 체육 시간에 종혁이가 오면 나는 늘 이름을 불렀다. 처음에는 대답도 안 했다. 조금 지나자 말없이 고개만 들었다. 조금 더 지나자 손을 들었다. 이제는 짧은 대답도 한다. 종혁이가 배드민턴채를 들고 서성이고 있을 땐 마주 서서 셔틀콕을 같이 쳤다. 종혁이가 큰 키로 플라잉디스크를 뺏어 공격권을 가져왔을 때는 친구들 앞에서 큰 목소리로 칭찬했다. 그래놓고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분명히 생각하고 말했는데. 생각하고서는 말을 뱉었다.
옆 선생님께서 장모님이 감을 챙겨주셨다고 했다. 태추단감이라고 알아요? 이 감은 원래 초록색이래요. 깎아놓으니 사과처럼 생겼다. 나는 맛없어 보이는 초록빛 감을 하나 집었다.
무심하게도 감이 정말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