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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 Oct 18. 2021

털 없는 내 친구

20171010

나의 친구는 나의 주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인사이다. 안녕. 잘 갔다 와. 안녕. 무사히 잘 왔구나.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주황빛 덩어리가 꼬리를 흔든다. 아침이다. ‘그’는 내게 입을 크게 벌리며 그것은 ‘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입의 벌려지는 정도를 보고, 그리고 특정한 음을 자주 듣다 보면 이게 이거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해’라는 나의 친구는 탐스럽다. ‘그’가 현관문 밖으로 나갈 때 나는 꼬리를 흔든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상한 것들에 잡아 먹히지 마. 불쾌한 악취가 나는 동족에게 다치지 마. 온몸을 흔들며 ‘그’의 근처를 뱅뱅 돈다. 그러면 ‘그’는 주둥이를 비비고 발을 흔든다. 그 순간 내가 말을 하면 그는 정확한 뜻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것이 애정에서 비롯된 언어임을 안다.


 나는 잠시 닫힌 문을 바라본다. 문 앞에서 5분 동안 앉아있는 행위는 하나의 의식과 같다. ‘그’는 자기 전 몇 분간 두 발을 모으고 무언가를 중얼중얼하는 데 그것과 비슷하다. 그게 무엇을 위한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은 눈을 뜬 뒤 나를 안아주기 때문에 나는 좋다. 따스한 품속은 포근하다. 5분여 정도 앉아있으면 어릴 적 기억이 빌려온다. 아직 이가 가렵기도 전에 나는 문을 ‘그’만 열 수 있는 벽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가고 나면 나도 같이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발톱으로 긁어대고 머리를 박았다. 나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내 생의 첫 번째 무력감이었다.


 동시에 문은 선물이었다. ‘그’가 나가지만 나는 ‘그’가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가 오겠지. 예전에는 나와 ‘그’ 사이를 막는 방해물을 온종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잠깐 어린 나를 기억하는 시간 동안만 앉아있다. 그 후에 뻣뻣해진 몸을 늘리기 위해 기지개를 켠다. ‘그’가 없는 시간 동안 나는 ‘해’와 논다. 불안감에 빙글빙글 돌 필요 없다. ‘그’가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으니까.


이제는 왕년처럼 뛰어다닐 힘도 없다. 방의 창틀에 머리를 올리고 ‘해’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직도 신기하다. 나는 ‘그’만큼의 색을 볼 수 없지만 ‘해’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해’는 규칙적이게 걷지만 여러 빛을 뿜어낸다. 불그스름한 노을이 먹음직스럽게 서쪽으로 향을 피운다. ‘그’가 올 시간이다. 나는 느릿하게 문 앞으로 걸어간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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